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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16년, 내가 기대하는 영화 ①

[칼럼]2016년, 내가 기대하는 영화 ① 대표 이미지

내 취향의 수비범위는 꽤 넓은 편이다. 아니 기쁨의 끓는점이 좀 낮다고 해야 할까. 스크린에 바친 2시간이 아까워서인지 극장 밖을 나올 땐 단점보다는 장점이 오래 기억에 남고, 간혹 용서하기 힘든 시간 낭비를 하고 나서도 ‘사정이 있었겠지, 감독은 얼마나 잘 만들고 싶었겠어. 자기가 더 답답할 거야’라며 스스로 위안하는 쪽이다. 요컨대 웬만하면 재미있다. 이미 본 영화를 분석하는 건 이해의 영역이지만 어떤 영화가 나를 즐겁게 해줄지 상상해보는 건 정확히 설명하기 애매한, 일종의 끌림에 가깝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언급할 영화들은 예측도 평가도 아닌 순수한 기대라고 봐주면 좋겠다. 예고편 영상이든, 감독의 명성이든, 영화 바깥의 정보든 출처에 상관없이 적어도 뭔가 하나는 꽂히는 지점이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우선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눈에 띈다. 식상한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영화를 논할 때 이 영화를 빼놓고 이야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래서 꼭 이 영화를 언급하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영화들이 전체적으로 밋밋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기술적인 완성도나 소재의 자극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술 수준은 점점 올라가고, 기획력도 안정적이며 소재는 늘 그래 왔듯 더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맨다. 그럼에도 어떤 경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 결국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공산품의 느낌이 짙어지고 있다. 좀 더 좁혀 표현하면 영화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감독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 작품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홍진 감독은 압도적이다. 나홍진의 목소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조차 그가 내는 강렬한 파열음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미 영화계에 공공연히 돌고 있는 흉흉한 소문(임필성 감독이 시나리오를 읽고 잠을 못 잤다든지, 봉준호 감독이 놀라서 급체를 했다든지)을 듣고 있자면, 다소의 과장과 오해를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가 어떤 충격을 안겨줄지 벌써부터 설렌다. 깜짝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 지금은 일부러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쪽이지만 현장에서 간절히 원했던 게 “날씨를 원하는 대로 담아내는 것”(「씨네21」 1036호)이란 말 한마디에 확신이 섰다. 이거다 싶은 지점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결기, 지금 한국영화엔 그런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동안 일본영화계의 침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내밀히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해안가로의 여행>을 비롯해 해외매체와 평론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화가 적지 않아 보인다. 그중에서도 유독 궁금한 영화 한 편을 꼽으라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 아워 ハッピ- アワ->다. 워크숍에서 개발된 시나리오로 제작에 착수했다는 이 재기발랄한 영화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예산을 모으고 워크숍에 참여한 일반인들을 캐스팅했다. 그야말로 독립영화 작업이 해볼 수 있고, 가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흥미를 자극하는 건 317분에 달하는 상영시간이다. 상영시간으로 메시지를 전하려는 실험영화가 아님에도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건 오직 배우들의 호흡을 자르지 않고 담아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현실 시간에 한없이 가까워지려 하는 건 모든 영화가 꾸는 꿈이다. 시간을 고스란히 옮겨 담는 거야 애초에 불가능하겠지만 종종 기적처럼 찾아오는 어떤 순간들을 포착하는 영화들은 있다. 예를 들면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손자를 떠나보낸 할머니의 머리 위로 불어오는 바람 같은. 혹은 2015년 한국영화 가뭄 속 단비였던 <한여름의 판타지아>에 담긴 직관에 가까운 조응처럼. 빈 순간을 스쳐 가는 감정들과 반응하는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감상 이전에 체험처럼 스며든다. <해피 아워> 역시 일상의 사소한 감동들을 쌓아올리는 영화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68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주인공 네 명이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에는 실험 혹은 대중 영화라는 구분이 무의미한 독자적인 호흡이 녹아 있지 않을까. 일본 젊은 영화인들의 활력을 하루라도 빨리 마주하고 싶지만 아마도 국내 정식 개봉은 요원할 것이다. 한편으론 그래서 더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마지막으로 오직 취향으로 밀어붙이고 싶은 영화가 하나 있다. 던칸 존스 감독의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Warcraft: The Beginning>이다. 안다. 나는 거의 틀림없이 이 영화에 실망할 것이다. 사실 예고편만 봐도 어느 정도 각이 나온다. 그럼에도 게임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팬으로서, 그 방대하고 치밀한 세계관을 아는 사람으로서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어쩌면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실망하기 위한 기다림인데, 간혹 그 설레는 시간 자체가 즐거울 때도 있다. 영화가 내 기대와 전혀 다르게 나와도 나는 기어코 어여쁜 면을 찾아 이 영화가 시리즈로 이어지길 소망할 것이다. 욕하면서 보는 것, 나는 욕해도 다른 사람의 비난으로부턴 감싸주고 싶은 것, 원래 팬심이란 그런 거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영화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보지 못한 모든 영화가 기대작”이란 식상한 멘트도 절반쯤은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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