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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학생부군신위

박철수, 1996

[한국영화걸작선]학생부군신위 대표 이미지

지금 와서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를 다시 꺼내 보는 것은 이상한 데자뷔를 느끼게 한다. 박철수 감독은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 <학생부군신위>는 죽음과, 죽음 이후의 장례를 다룬 영화다. 그는 자신의 예기치 않은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그는 하늘 저 멀리서 자신의 장례가 제대로 치러지는가를 보고 있었을까. 영화에서처럼. 영화가 그랬듯이. 

<학생부군신위>는 박철수 영화인생에서 가장 불꽃 같던 나날 가운데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96년을 전후해 박철수는 <삼공일 삼공이>와 <산부인과> <가족 시네마> 등 주옥같은 작품을 찍었다. 종횡무진이었다.

박철수는 늘 삶과 죽음의 원초성에 관심이 많았다. 산다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목을 하나하나 밟아 가는 것일 뿐이며 거기엔 일정한 추상과 패션이 없다, 그 모든 게 허상일 뿐이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가능하면 날 것 그대로의 문법과 어구를 영화 속에 나열하려 애썼다.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감성을 전달하는 것이 영화의 몫이라고 봤다. 늘 그는 영화를 통해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산다는 것이 뭐 별것이겠어? 먹고 싸고 (섹스)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학생부군신위>는 시골에 있는 한 남자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타지에 나가 있던 아들 딸들이 돌아 온다. 자신을 모시고 살던 둘째 아들을 중심으로 장례 절차가 준비된다. 동네에서 전통의식 꽤나 아는 사람들이 모이고 집 주변은 이내 시끌벅적해진다.

이상하게도 영화는 조용하거나 차분하지가 않다. 박철수는 의도적으로 영화 전반에 산만하고 두서없이 이야기를 주단처럼 깔아 놓는다. 한편으로는 비교적 어려운 장례 의식과 절차가 설명되는가 하면(임종이니 수시, 고복, 발상, 전, 부고 같은 단어들) 한편으로는 온갖 사람들이 고인 앞에 달려들어 와 자신이 그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적자(嫡子)임을 주장하며 좌충우돌 해프닝을 벌인다. 박철수에게 있어 장례란, 그리고 죽음이란 세익스피어식 한여름밤의 소동극이다. 소동은 슬픈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쁘고 즐거운 것만도 아니다. 그저 요란스러울 뿐이다. 그 요란(搖亂) 속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져 있다, 고 그는 봤다. 희와 노, 애와 락은 따로따로 존재하거나 순차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몸으로 존재하며 마치 변증법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죽음은 슬퍼할 것만이 아니다. 거기엔 축제의 요소가 있다. 반대로 삶도 그렇다. 기쁘고 찬란한 것만이 아니다. 거기엔 늘 고통이 수반된다.

<학생부군신위>가 기발한 것은 순간순간의 유머와 재치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아들 간에 종교 싸움이 벌어지는가 하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전통 의식을 알지 못하는 동생, 곧 자식들 삼촌이 설레발을 치고, 동네 청년들은 장례식도 때아닌 잔치랍시고 오랜만에 돼지를 잡아 그 자리에서 간을 썰어 먹으면서 서로 좋다고 낄낄댄다. 영화는 생과 사의 갈림길, 그 경계가 그리 크지 않음을 심각한 척하지 않고 재미있게 보여 주려 애쓴다. 

이런 장면도 있다. 어울리지 않게 시골 장터의 다방 레지가 장례식에 와서 엎어진다. 그녀는 자신이 죽은 노친네의 살아생전 소원만 들어줬어도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가지 않았을 거라며 꺼이꺼이 댄다. 그 소원이란 것, 안 들어도 뭔지 다 아는 얘기다. 또 한 사람, 별로 이 집안과 관계가 없을 법한 남자도 영정 앞에서 자빠지는 수준이다. 그 사람 역시 노친네가 죽은 것이 자기 책임이라는 것이다. 자전거 바퀴의 바람만 넣어 줬어도 노친네가 논두렁에 처박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절규한다. 근데 웬 절규? 그 모든 게 다 쇼처럼 느껴진다. 코믹하다. 이들의 장면을 보고 있으면 역설적으로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박철수식의 통찰이 느껴진다.

영화 <학생부군신위>는 문어체와 구어체를 오간다. 픽션과 리얼을 오간다. 때로는 영화 속 영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큰아들로 출연하고 있는 박철수는 영화 속에서 장례식 장면을 영화로 찍는 모습을 보여 준다. 영화 속에서 큰아들은 영화감독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을 영화로 찍는 큰아들의 모습은 박철수 본인이 영화와 현실을 끊임없이 오가며 삶과 죽음에 대해 계속되는 착시와 직시 속에 살았음을 보여 준다. 어쩌면 예술은 그런 것이다. 실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감독은 매작품마다 걸작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특정 시기에 예술혼이 반짝하는 것일 뿐이다 <학생부군신위>는 박철수의 영화 미학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영화가 꽤나 번득인다. 이 영화 한 편만으로도 박철수는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돼야 할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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