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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어화

안철영, 1938

[한국영화걸작선]어화 대표 이미지

안철영 감독의 38년 작 <어화>는 일본 제국주의가 노골화되던 30년대 말, 정치적인 상황과는 다르게 ‘동양주의’가 문화 전반을 휩쓸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다. 30년대 이후 식민지 문화 정책의 하나로 독려되었던 ‘반도적인 것’ ‘조선성’에 대한 요구는 원시성, 향토성을 통해 드러나는 열등한 외지로서의 식민지 조선의 풍경에 대한 엑조티즘과 그 열등성에 대한 강조로서 등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러한 조선적인 색채의 강조가 조선 문화계에 농민문학, 향토미술과 같은 이름으로 의외로 빠르게 흡수된 데에는 일본이 자신들의 근대적 동양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정의했던 조선성이 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 근대 치하에서의 민족적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인식하려는 움직임으로 작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화>의 줄거리는 기존의 신파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촌의 가난한 어부의 딸 인순은 고향 친구인 최천석과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빚 대신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는 수전노 장주사의 마수를 벗어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지만, 장주사의 아들 철수의 꼬임에 넘어가 그에게 순결을 잃는다. 그녀의 고향 언니이며 서울에서 버스 차장으로 일하고 있는 옥분의 도움으로 철수의 거처에서 빠져나온 인순은 취직이 여의치 않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기생이 된다. 우연히 기방에서 철수와 마주친 인순은 모멸감에 자살을 기도하지만, 그녀를 찾아온 천석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무산계급 착취와 성폭행, 서울에 상경하여 타락하는 순진한 시골 처녀 등 신파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어화>는 주인공의 기구한 운명에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성에 기대기 보다는 고향, 향토성에 대한 노스탤지어, 하층 여성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을 기반으로 한 계몽 의지가 드러나는 영화다. 부르주아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다룬 2,30년대 구소련 영화들이 즐겨 다루었던 주제와 형식에 큰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어화>의 구조는 댓구와 대조법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인순과 그녀의 가족, 그리고 옥분의 공간이 비교적 탁 트이고 시골적인 야외 풍경을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반해, 철수와 장주사는 내러티브 상 필요한 장면들을 제외하고는 주로 실내에서 등장한다. 인순이 철수와 함께 서울에 올라온 후 철수가 등장하는 장면은 주로 호텔, 회사, 다방과 같은 인공적이고 세련된 느낌의 도시 공간을 상정하고 있는 반면, 인순이 서울에서 옥분이나 천석과 조우하는 장면은 시골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공원과 같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시골과 도시, 인순과 철수와 같은 대립항들을 더욱 공고하게 해 주는 형식적 장치들이다. 

<어화>에서 농촌과 도시라는 극명한 이미지의 대비는 영화 전체의 수미상관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마을 축제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쾌지나칭칭나네’라는 민요와 더불어 춤추고 축제를 즐기는 어른들의 모습이 몽타주로 보여진다. 그리고 민요가 계속 연결되면서 장면은 바뀌고 인순과 천석의 롱숏이 등장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첫 장면과 대구를 이루는 장면이 나오는데, ‘쾌지나칭칭나네’라는 민요가 역시 깔리지만 춤추고 즐기는 사람은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다. 이 장면은 마치 음악에 맞춘 듯 좀 더 빠른 템포의 몽타주로 구성된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영화 초반부의 추이와 마찬가지로 천석과 인순의 롱숏으로 연결된다. 영화 첫 장면에서는 긴 머리채에 전통 한복을 입고 있던 인순은 마지막 장면에서 머리를 올리고 짧은 계량한복 차림이다. 이처럼 <어화>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의도적으로 대구로 구성하면서 미묘한 차이를 두어 주제를 전달한다. 아이들의 이미지가 상징하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인순의 변화는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계몽주의 시선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이다. 

<어화>와 같이 농촌을 소재로 조선성을 드러내는 영화들은 농촌의 현실을 보여주기보다는 인공적인 농촌의 모습을 전시한다는 오명을 씻기 힘들었다. 조선적인 것을 스크린에 담는 순간 이국적 토산품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은 식민지의 문화 예술이 처한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화>에서 농촌의 원시적 아름다움은 도시의 위협적인 이미지와 대비되는 노스텔지어적 공간을 구성한다. 이는 곧 도시로 대표되는 위협적인 식민지 근대화에 대항하는 계몽에 대한 의지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화>는 식민지를 바라보는 엑조티즘의 시선을 담보로 한 로컬리즘을 전략적으로 구현하면서, 그 안에서 식민 근대화에 저항하는 계몽성을 강조하는 이중의 시선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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