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마의 계단
이만희, 1964
6,70년대 한국 장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대상이 되는 영화가 얼마나 오리지널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표절이나 인용에 대해 지금보다 융통성 있는 시대였고 장르팬들의 감시도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한국 미스터리 장르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이만희의 <마의 계단>에 대해서도 확신은 못하겠다. 영화음악의 절반을 할리우드 OST 앨범에서 훔쳐온 사운드트랙만 봐도 경고처럼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마의 계단>은 비교적 융통성있게 넘어가도 된다. 이 이야기가 어떤 경로를 거쳐 이만희에게 도달했는지 몰라도 이야기의 수원이 무엇인지는 쉽게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브왈로 - 나르스자크 콤비의 소설인 <이제는 없는 사람>을 각색한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디아볼리크>이다. 그리고 지금 와서 <디아볼리크>를 흉내냈다고 비난하는 건 민망하다. 6,70년대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흉내냈다. <마의 계단> 이후 나온 몇몇 한국 작품들은 심지어 브왈로 - 나르스자크 콤비가 쓴 원작의 무단 각색물이기도 하다.
<마의 계단>이라고 하니, 계단 자체에 엄청난 비밀 같은 것이 숨겨져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기능성만 보면 이 영화의 계단은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가 주인공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인(들) 정도의 역할을 한다. 괄호를 치고 (들)을 붙인 건 주인공 현 과장의 운명을 좌우한 계단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는 두 개이고, 그의 신분상승 욕구와 그의 몰락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계단도 있다. 엄격하게 의미를 따지면 아귀가 딱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관객들이 앞으로 볼 영화가 무엇인지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멋들어진 제목이다.
<디아볼리크>에서 아이디어를 가져 온 영화라고 했지만 영화의 도입부는 <죽음 전의 키스>나 <젊은이의 양지> 쪽에 가깝다. 종합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일하는 중년의 의사 현박사는 같은 병원의 간호사인 진숙과 비밀 연애 중이다. 그런데 병원장의 딸이 현박사에게 수작을 걸자 상황이 바뀐다. 병원장의 사위가 되어야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병원도 물려받을텐데 장애물인 여자친구를 어떻게 한다?
김진규가 연기하는 현과장에게서 <젊은이의 양지>의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죽음 전의 키스> 영화판의 로버트 와그너나 맷 딜런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 그는 딱 중간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악한 악당은 아니다. 그렇다고 동정심이 느껴지는 주인공도 아니다. 그는 시청자들이 욕하면서도 따라가는 연속극 악당에 가깝다.
여기서 배우 김진규의 존재감은 큰 역할을 한다. 아마 우리가 보는 지금의 김진규는 당시 관객들이 보았던 김진규와 조금 다를 것이다. 당시 관객들은 그를 한국의 캐리 그랜트처럼 보았겠지만 대부분의 현대 관객들은 그를 왜소한 소시민 아저씨로 볼 것이다. 깨져야 할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와서 볼 때 배우 김진규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전후 남한 사회를 힘겹게 버텨내는 쪼잔하고 찌질한 소인배를 연기할 때이기 때문이다. <마의 계단>은 그런 그를 위한 루저의 오페라다. 악당이 되기엔 잔인함이 모자라고, 정의롭기엔 양심이 부족하고, 양쪽 어느 쪽이 되기엔 필수적인 깡도 용기도 없는 남자가 위태로운 낭떠러지 근처에서 절묘하게 찌질거린다. 찌질찌질. 찌질찌질.
현과장의 찌질거림은 영화가 <젊은이의 양지> / <죽음 전의 키스>를 거치는 동안 계속 상승하다가 ''''''''''''''''살인''''''''''''''''이 벌어지고 영화가 <디아볼리크>로 넘어가면서 절정을 맞는다. 분명히 병원 연못에서 나와야 할 여자친구의 시체는 나오지 않고 그가 가는 곳보다 여자친구의 유령이 따라다닌다. 얼음처럼 냉정한 얼굴로 그들 사이의 허공을 응시하며.
이게 말이 되는가? 끝에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말은 안 된다. 하긴 지금까지 내가 본 이만희의 장르 영화들 중 말이 되는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이 영화의 사건들은 전혀 현실적이 아니지만 당시 관객들은 별 생각없이 받아들였던 기묘한 비현실의 우주에서 벌어진다. 60년대의 관객들과 지금의 관객들이 김진규라는 배우를 다른 이미지로 보듯, <마의 계단>이라는 영화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다.
단지 그 변화는 영화에 큰 마이너스는 되지 않는다. 진숙의 유령을 연기한 문정숙의 마네킹 같은 얼굴이 무섭다기보다는 어색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만희가 택한 압도적인 흑백 스코프 화면(크레디트에 따르면 ‘세기 스코프’다)이 60년대 한국의 초라한 재료들을 가지고 만들어낸 악몽의 힘은 지금이 더 강렬할 것이다. 이 영화의 와이드스크린 화면을 올바른 조건에서 감상할 기회가 얼마 없는 건 아쉬운 일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유튜브로 영화를 돌려보는 동안 얼마나 갑갑했는지 모른다. 아무리 찌질한 소인배가 주인공이라고 해도 그의 몰락을 그리기 위해 장엄한 배경이 따라주어야 할 때가 있다. <마의 계단>이 바로 그런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