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다시 카메라를 들고 종로 골목을 어슬렁거려야겠다

[칼럼]다시 카메라를 들고 종로 골목을 어슬렁거려야겠다 대표 이미지

해가 바뀌었다. 동서양이 만들어 놓은 새해의 유예기간도 음력 설이 찾아오며 끝나버렸다. 5년을 견뎌야 할 새 정부도 출범했고, 어느덧 찾아온 봄날은 초여름 수준이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2013년의 1/4이 술술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새 출발의 봄기운이 살랑거리는 탓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특정 질문이 많아진다. 모든 창작자가 부담스러워하는 바로 그 질문. “다음 작품은 언제 보여주실 거예요?”

물론, 막역하지 않은 감독에게 건네는 만만한 인사치레였을 것이다. 마치 “잘 지내시죠?” 와 같은 관용적 표현이었으리라.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부담스런 말이 아닐 수 없다. 딱히 차기작 제작에 돌입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면 정말,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차기작 구상이라는 핑계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있기는 하지만, 큰 진전은 없다. 전작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어 좀 더 쉬어야 한다는 변명이 이젠 부끄러울 때도 됐건만, 여전히 남용하고 있다. 남들 눈에는 딱 봐도 천하태평 한량이겠지 싶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10여 년을 해왔던 다큐멘터리 작업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인생의 궤도를 바꿔 탈 수 있는 여지도 줄어간다. 무슨 배짱이었을까? 무슨 깡이 있어 이렇게 영화 한답시고 살게 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이유는 뭘까?

‘나는 왜 찍는가’에 대한 상념에 빠져있던 중, (남몰래 흠모했던) 친한 선배가 영화 잘 봤다며 선물로 준 책이 생각났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 스스로 ‘MTV 영상 세대’라며 활자와는 담을 쌓고 지낸 나였지만, 거장인 조지 오웰에게 무언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책을 읽으며 그 선배를 향한 연정을 되새겨 보고픈 마음도 한몫.) 나는 대체 왜 찍는 걸까?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동기로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과 아름다움을 향한 ‘미학적 열정’을 꼽았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대의명분보다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 생각했던 다른 삶의 롤모델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었다는 점에서 몹시도 허황한 것이긴 했지만.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이 선지자의 창작 동기는 ‘역사적 충동’이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로서의 충동. 이런 충동 덕분에 조지 오웰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형식의 글로 남겼을 것이다. 그가 글을 쓰며 역사를 남겼다면, 다큐멘터리스트는 영상을 찍으며 역사를 보존하는 사람들 아닐까. 

<종로의 기적>을 만들며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는 종로 게이들의 역사가 다큐를 통해 남겨지길 바랐다. 2010년의 한국에서 성 소수자가 이렇게 생존했음을 후세에 남기고 싶었다. 어디에나 있는 삶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역사였으니까. 남성중심주의 속에서 외면당했던 여성의 역사가 여성주의자들을 통해 새롭게 발굴되었듯, 성 소수자의 역사를 성 소수자의 시선으로 다큐멘터리에 담아내고 싶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여전히 배가 고프다. 한술 밥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남겨야 할 성 소수자들의 삶은 무수한데, 엄혹한 시대를 가로질렀던 선배 성 소수자들의 인생을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꼼꼼히 기록해둬야 하는데, 인제야 역사적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차기작에 대한 열쇠는 내 첫 작품이 쥐고 있었으니, 에둘러 왔지만 이제라도 정신 차렸으니 다행이지 싶다.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카메라를 들고 다시 종로 골목을 어슬렁거려야겠다.

아!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조지 오웰의 마지막 동기는 바로 ‘정치적 목적’이다. 무슨 군말이 더 필요할까. 그저 조지 오웰 작가님의 말씀을 오롯이 인용하는 게 낫지 싶다.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새 정치로 어수선한 봄날이다. 황사가 불어와도 꽃은 필 터이니, 우리 모두 충동 느끼며 정치하게 영화 찍으며 살아 봅시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