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오스카 피싱어의 우주 속을 거닐다 < Raumlichtkunst (Space-Light-Art) > c.1928 / 2012
# 1 (Tracking) 런던, 테이트 모던 4층의 한 전시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급하다. 사이렌의 목소리에 최면이 걸린 듯싶다. 오스카 피싱어Oskar Fischinger의 작품이 소개된다는 정보만 한 줄 주워듣고는, 안내 데스크에는 묻지도 않고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몇 층인지, 몇 번째 전시실인지 확인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스스로의 발걸음에 나머지 몸은 따라갈 뿐이었다.
# 2 (Close-Up) 칸딘스키와 후앙 미로의 추상화, 그 속에서 환청으로 들려오는 음률. 모홀리 나기의 흑백 영상 속에서 펼쳐지는 빛의 안무. 무작정 향한 그 전시실 (“Structure and Clarity”)은 평소에도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기존의 회화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모로 공들였던 결과물들로 들어찬 상설 전시관이었다. 몇 개의 파티션을 지나서 비로소 멈추어 섰다. 자세히 보지 않았으면 지나쳤을 자리.
# 3 (Black Out) 까만 파티션 벽을 따라 들어가다 꺾어져야 비로소 그곳이 나온다. 일반 작품들이 걸려있는 전시 공간 속에서는 쉽사리 알아챌 수 없는 곳. 마치 벽 속 어딘가에서 홀연 나타나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블랙홀과도 같다. 들어가는 순간 공간은 컴컴하고, 오직 한쪽 벽면에 우주의 모습이 펼쳐진다. 긴 전시벽 한편을 가득 채운 세 개의 스크린, 그 면을 제외하고는 직육면체 공간의 나머지 다섯 면은 암흑 속에 비어있다. 대신 인도네시아의 전통 음악 Gamelan이 진공 속 우주를 채운다.
# 4 (Multiple-Composition) 오스카 피싱어의 < Raumlichtkunst (Space-Light-Art) >는 이처럼 비로소 현재의 관(람)객을 만난다. 그 작품은 그렇게 기획되었다. 나란히 놓인 세 개의 스크린 (영화 시대의 삼면화)에 영사되면서, 라이브 음악을 동반하는 작품. 각각의 스크린 위에는 오스카 피싱어의 작업을 대표하는 이미지들?구상과 추상, 기하학적 구성과 비정형성의 운동?이 각자만의 리듬감을 지니면서 어우러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애초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각 이미지들은 파편들이었고, 여러 개의 필름 릴 속에서 뒤엉켜 있었다. 피싱어 자신도 그 어떤 완결된 형태를 규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현재의 아티스트들이 미디어 아트, 비디오 아트, 설치 미술,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포스트 미디엄 아트, 확장 영화 등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하더라도, 약 85년 전에 피싱어가 구상한 프로젝트 앞에서는 여전히 설익어 뵌다.
# 5 (Insert) 필름 복원(학)의 최고 권위자인 파울로 체르치 우사이Paolo Cherchi Usai는 잠언서와도 같은 <영화의 죽음: 역사, 문화적 기억, 디지털 암흑 시대 The Death of Cinema: History, Cultural Memory and the Digital Dark Age> (2001)라는 책의 상당 부분을 필름의 물리적 죽음에 관련한 이미지들로 병치하였다. 필름도 사람처럼 제 수명을 다하면 사라지고 만다. 디지털 시대의 복원은 미라를 방부 처리하던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토록 열망하던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르겠다. 한창때의 생기 그대로를 가지고, 더이상 소멸과 손실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영생불사하는 경지. 하지만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미이라, 박제일 뿐이다. 피싱어의 작품은 적어도 테이트 전시실 속에서는 환생하였다. 어쩌면 1920년대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였다면 ‘촤르르르’ 돌아가는 세 대의 영사기 소리와 라이브 연주 소리가 뒤엉키고, 루프 반복 속에서 필름 프레임의 이미지가 열화 될 수도 있었을 테니. 그러나 우사이는 디지털 복원이 죽음을 극복한 부활이 아니라 영원한 파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필름의 물리적 유한성과 파편성을 부정하는 순간, 오히려 그러한 파편의 흔적들이 가리켰던 역사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이다.
# 6 (Director’s Cut) 아티스트는 자신의 작품을 알아봐 주는 기록자를 만나야 한다. 그것이 큐레이터이든, 평론가이든, 역사가이든 간에.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난 예술 형식과 장르는 특히나 그러한 행운이 있어야 한다. 생전에 그것을 기록하거나 사후에 그것을 발굴해주거나. 피싱어는 그 점에서 행운이 있었다. 윌리엄 모리츠William Moritz라는 연구자를 만날 운명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모리츠가 맡은 역할은 단지 발굴, 기록, 복원에 머물지 않는다. 테이트 모던의 전시 공간에서 상영된 < Raumlichtkunst >는 피싱어의 작품이면서도, 모리츠가 재구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즉, 본래의 모습 고스란히 영원토록 간직하는 복원이 아니라, 소멸 가능한 파편들로 새롭게 현재의 생명을 얻은 윤회이다.
# 7 (Flash Back) 테이트 모던 전시실의 어두운 방에 펼쳐진 오스카 피싱어의 우주는 내게는 데자뷰와도 같다. 내가 윌리엄 모리츠의 마지막 수업 조교를 맡았던 학기 첫날, 모리츠는 나에게 자신의 연구실 문을 활짝 열어 보여주었다. 연구실 가득 들어찬 작품들은 그의 보물이자 우주였다.
# 8 (Epilogue) 테이트 모던은 < Raumlichtkunst >를2012년 6월 1일부터 2013년 3월 24일까지 전시하였고, 3월 12일은 윌리엄 모리츠의 9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비주류 영화에서 아키비스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삶으로 보여준 모리츠 선생님께, 한국영상자료원에 쓰는 나의 첫 칼럼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