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제한상영가 논란 언제까지, 민간자율기구가 필요하다
사실 등급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은 참으로 지겨운 일이다. 나는 2002년 2기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죽어도 좋아>의 제한상영가 판정에 항의해서 사퇴한 바가 있고, 그 이후 꾸준히 표현의 자유와 영등위의 개혁을 위해 싸우고 노력했다. 그런데 10년도 더 지난 지금 영등위는 당시보다 한참을 후퇴했고, 영화 표현의 자유는 제약받고 있으며, 관객의 볼 권리는 침해당하고 있다. 오히려 일베 사이트에서 표현의 자유를 한껏 누리고 있지 않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영화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와 유해 영화로부터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와 논리가 더 높은 것이 아닌가 싶다. 심한 자괴감이 든다.
두 번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뫼비우스>의 찬반시사가 있었다. 상영에 앞서 제작진은 성인이 영화를 봐도 된다고 생각하면 ○표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표를 주는 투표용지를 나눠 주었다. 나눠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민망할 수밖에 없는 고육지책의 이벤트였다. 이런 사태를 만든 것은 영등위이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아니고, 영화를 보고 ○, ×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그 자리에 모인 영화비평가들과 감독, 피디를 포함한 영화관계자 역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투표 결과는 87%가 성인 관객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답했다. 혹시 만장일치가 나올까봐 나라도 반대표를 던져야 하나 잠깐 고민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이 던진 찬성표는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힘주어 말하지만 영화를 볼 수 없게 하는 제한상영가 등급은 없애야 한다.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제한상영관도 없지 않은가? 영등위는 제한상영관이 없는 것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하지만, 제한상영가 등급을 주지 않는다면 애초에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다.
<뫼비우스>와 <자가당착>은 영등위로부터 연이어 2번에 걸쳐 제한상영가를 받았다. 이런 등급심의 절차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한 기관에서 내린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는데, 같은 기관에 소속된 구성원들이 다시 심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재심을 청구할 경우 영화 제작자와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영등위가 원하는 방향으로 삭제하고 심의를 받게 된다. <뫼비우스>는 재심을 청구하면서 자진 삭제를 했고, 세 번째 심의를 청구하면서도 일부 장면을 삭제했다고 한다. 아마도 <뫼비우스>는 곧 관객이 볼 수 있겠지만, 만신창이처럼 삭제된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자가당착>은 영화를 삭제하지 않고, 무수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영등위와의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언제 관객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등급 결정에 불복할 경우 더구나 그것이 상영금지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한번 심의를 했던 같은 기관이 아닌 다른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다. 영등위는 지금까지 이런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합리적인 심의절차를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독일은 상영금지 처분이 있지만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상영금지가 내려지지 않았다. 금지를 시킬 경우에도 같은 기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상위기관에서 다각도의 논의 속에 결정된다. 영상물이 상영될 권리와 관객의 볼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흔한 해외 사례를 드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자가당착>은 일본에서 중고생 관람가로 개봉했고, <홀리모터스>(편집자 주: <홀리모터스>는 남성의 발기한 성기가 노출된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결국 블러 처리하여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는 프랑스에서 전체관람가에 해당하는 U등급을 영국에서는 18세 관람 등급을 호주에서는 15세 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만이 온전히 영화를 개봉할 수 없는 등급을 받았다.
<뫼비우스>는 국내 개봉 전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상영을 앞두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온전히 영화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영화관에서만이라도 제한상영가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제한상영가가 상영금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당장의 사회적 논란은 피해갈 수 있겠지만, 와이드 릴리즈를 목표로 하는 영화는 18세관람가를 받기 위해 또다시 자진삭제를 하게 될 것이다.
현 등급제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영화인들의 지난한 싸움의 결과이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다. 그렇다면 대안은? 첫 번째, 제한상영가 등급을 없애는 것이다. 도대체 성인들이 귀중한 시간을 내고 자기 돈을 들여 보지 못한 영화란 무엇이란 말인가? 혹여 포르노그래피가 상영되면 어쩌냐는 우려는, 현재의 극장 시스템이 멀티플렉스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무엇이 포르노이고 그것을 상영 금지해야 하는지는 또 다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 현재의 등급 체제에서 제한상영가를 내리지 않으면 된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최근 제한상영가를 받은 <자가당착> <뫼비우스> <홀리모터스> 같은 영화들은 제한상영가에 어울리지 않는 영화들이다. 혹 제한상영가가 내려지면, 영등위가 아닌 제3의 기구에서 판단을 내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영등위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세 번째, 영등위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심의를 민간자율로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영등위 위원들을 임명하고, 위원회에서 등급분류위원을 임명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비대한 조직과 불필요한 논란을 지속적으로 야기시켜왔다.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민간자율기구를 만들어 온전한 등급 서비스와 청소년을 위한 페어런츠 가이드(Parents Guide)를 제시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10년이 지속된 현 등급 체계가 끊이지 않는 논란을 제공하고 있기에 영화인들이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민간자율기구가 필요하다.
이런 부분들은 영등위가 지속되는 등급논란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연구하고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방어적이며 보수적인 논리로 조직의 유지에만 힘을 기울여 왔다. 앞으로 영화인들이 힘을 모아 영화 표현의 자유를 확고히 하고, 관객의 자발적 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추진해야 나아가야 할 과제이다. <뫼비우스> 사건과 관련해 영화감독조합은 영등위 위원장의 퇴진도 불사하는 투쟁을 시작했고, 장기적으로 민간 자율 심의를 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표현의 자유 문제는 독립영화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고, 법적 투쟁으로 제도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 제한상영가를 없애는 문제. 나아가 민간자율심의기구를 만드는 문제는 독립영화인들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수많은 이견을 조율하고 기구를 운영할 수 있는 방안과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빨리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제안한 내용이 만병통치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등급 시스템은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