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퀴어독립영화 감독이 배우를 찾는다는 것
한 모델을 우연히 만났다. 하긴 우연히, 라기보다는 신인 배우를 찾기 위해 모델 에이전시 홈페이지들을 뒤지다가 뭔가 느낌이 있어 보여서 미팅을 가졌더랬다. 실제로 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영화적인 얼굴을 가진 무명의 모델. 연출팀 막내의 말을 빌리자면, 반짝반짝 빛나는 숨은 원석이었다.
하지만 그 모델은 영화 일에 자신 없어 하는 태도로 일관했고, 나는 설득할 요량으로 그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오늘 밤에 그랬다. 내 영화에 굳이 출연하지 않아도 되지만, 당신이 영화배우를 하지 않는 건 영화계의 큰 ‘손실’이라는 허풍을 떨었다. 작은 역할이지만, 그게 배우로서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수줍어하는 그에게, 느끼한 꼰대처럼 프루스트의 ‘가지 않는 길’의 말미 시구를 덥썩 쏟아내기도 했다. “사람이 덜 다닌 길을 갔더니 그 때문에 이렇게도 달라졌노라.”
그러나 그 모델을 돌려보내고 뒤돌아서는 순간, 표정이 바뀌고 삽시간에 피곤이 몰려왔다. 대체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무명 배우들과 일하는 게 얼마나 지겹고 힘든 일인가. 왜 이런 고생을 자처하는 거지?
맙소사, 이번 영화의 주조연 배우들도 모두 생짜 신인들. 오늘만 해도 이게 리딩 시간인지 연기수업인지 도통 헷갈릴 정도다. 발성의 기초부터 대사 호흡에 이르기까지 온통 새파랗게 아마추어적이다. 리딩을 많이 해도 현장에서 악순환은 반복되기 일쑤다. 악센트를 어디에 넣고, 문장 어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일일이 지적하고 다듬다 보면 정작 연출의 다른 부분은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신인 배우들을 기용해 한 명의 배우로 키워내는 일이 보람 있지 않냐고 묻곤 한다. 허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찍는 영화들마다 이렇게 백지장처럼 여백만 100% 꽉꽉 채워진 신인들을 마주하게 되면 어느 순간, 마음이 하얗게 질리게 된다. 현장에서 백발마녀처럼 윽박지르는 것도 어린 친구들에게 참 미안한 노릇이다. 기성 배우를 쓰면 되지 않냐고 쉽게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 당신이 가난한 독립영화, 특히 퀴어영화를 찍어봐라. 배우에 대한 욕심보다 연예인에 대한 욕심으로 무장된 잘난 기성 배우들이나 사회적 편견을 머릿속에 꼭꼭 챙겨놓은 배우들에게 수없이 ‘까이게’ 되면, 자연 무명 배우들의 프로필들 속을 유영할 수밖에 없다.
서울 사는 김서방 찾는 마음으로, 무명배우들 속에서 너무 순수하다 못해 발성법조차 원초적으로 모르는 앳된 얼굴을 찾아내고 또 배역에 걸맞게 다듬는 일의 연속. 피로가 물집처럼 잡히는 일이다. 영화의 기초가 아니라 연기의 기초를 먼저 세워야 하는 일, 구조 자체가 시작부터 뒤틀려 있다.
나와 함께 오랫동안 작업했던 프로듀서는 “그게 다 네 팔자야”라고 말하곤 한다. 가난한 독립영화와 남들 기피하는 퀴어영화를 자청해서 찍기 때문에 따라붙는 혹이지 않냐는 것. 맞는 말이다. 누굴 탓하겠나. 연기 잘하고 인지도 있는 배우들이 시나리오가 좋아서 독립영화에 선뜻 출연하고, 편견의 경계 사이에서 배우들이 저 옛날 해악의 광대처럼 신통방통하게 줄타기를 하는 영화판 풍토가 부재한 이 각박한 연예천국 한국에서 남들 안 찍는 영화를 찍을 때 수반되는 염증 같은 것.
구조적이든, 나 개인에게든 그런 판이 벌릴 때까진 그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신인들을 다그치고 격려하며, 때로는 복수하는 마음으로 흡혈 새들을 풀어놓을 수밖에. 투르니에의 이 말은 여기에 얼마나 싱크로율 높은가. “한 권의 책을 출판할 때 그는 익명의 남녀 무리 속으로 종이로 만들어진 새떼를, 피에 굶주려 야윈 흡혈조들을 풀어놓는 것이다.”
오늘도 리딩을 하면서 주조연 배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른 무럭무럭 자라서 사라져버려라.” 그래, 내가 미력하나마 아야어여 발성부터 배우로서의 싸가지를 습득하도록 도와주었던 신인배우들을 피에 굶주린 흡혈 새떼들처럼 풀어놓는 일, 아마도 그게 나와 내 후배들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푸닥거리라고 자족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