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영화걸작선]가족의 탄생

김태용, 2006

[한국영화걸작선]가족의 탄생 대표 이미지

<가족의 탄생>(2006)은 그 자체로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2000년대에 만들어진 ‘가족영화’의 흐름 안에서 볼 때 더더욱 그 의미가 돋보이는 영화다. 내게 <가족의 탄생>은 2007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가족영화,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한 해 동안 한국영화에서 폭발적으로 분출했던 ‘아버지의 귀환’ 현상을 목도한 이후 소급적으로 그 존재가 더욱 소중해졌던 영화다(2007은 <아들>, <날아라 허동구>, <즐거운 인생> 등 줄잡아 9편의 ‘아버지 영화’가 극장에 걸린 해다). 수많은 아버지 영화들이 불가능한 아버지의 귀환(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부장 자리의 귀환)을 퇴행적으로 호소하고 있을 때, <가족의 탄생>은 그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가족(윤리)의 탄생’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것은 IMF 이후 가속화된 가족(자본주의적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해체에 대한 서로 다른 영화적 반응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감성의 대결이자, 그것과 조응하는 영화적 양식과 미학의 대결이었다. 2007년의 아버지영화들이 주로 ‘고전적 리얼리즘(또는 한국적 남성멜로)’에 기대고 있을 때, <가족의 탄생>은 일종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었다. 새로운 감성은 새로운 미학을 요청하는 법이다.

김태용 감독의 필로그래피 속에서 보자면, <가족의 탄생>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장르 또는 판타지의 차용과 <만추>의 모던 리얼리즘이 식별불가능하게 혼합된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가족의 탄생>은, 엄밀히 말하자면 세 커플(또는 가족)의 탄생을 그리고 있다. 미라(문소리)-무신(고두심)-채현(정유미)라는 아마조네스적 가족의 탄생, 선경(공효진)-경석(봉태규)이라는 씨다른 남매 가족의 탄생, 그리고 채현-경석이라는 미래의 예비 가족의 탄생이 그것이다. <가족의 탄생>에는 리얼리즘적 요소와 판타지적 요소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진지함과 유쾌함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촬영은 그 연기 스타일과 때론 조응하고 때론 어긋나면서, 디지털-리얼리즘에 가까운 핍진성과 장르적 환상성의 경계를 넘나든다. 각각의 에피소드 안에서의 단호한 컷은 절제와 생략의 미학을 보여주지만, 각 에피소드는 몽환적인 환상성을 통해 연결된다. 미라와 무신이 마루에 앉아서 마당에서 뛰어노는 채현을 바라보는 놀랍고 아름다운 액자 구성의 첫 번째 판타지는, 10년 후 그들이 어떻게 아마조네스족이 될 수 있었는지를 긴 말 필요 없이 설명해 준다. 너무 늦게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된(또는 받아들이게 된) 선경이 오열하는 순간 등장하는 공중부양의 두 번째 판타지 역시, 선경과 경석이 어떻게 10년 후 어떻게 모자 같은 남매가 되어 함께 살게 되었는지를 말없이 설명해 준다. 영화의 7명의 주연 중 형철을 제외한 6명의 인물이 모두 등장하여 만들어내는 노골적인 판타지(TV 속에서 현실의 하늘로 공중부양하는 선경과 그 밤 하늘에서 펼쳐지는 갑작스러운 불꽃놀이)는 다소 과장된 감이 없지 않지만, 웅변적으로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바깥에서 생성되어가고 있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가족의 탄생>에서의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 아버지가 배제된 상태에서 엄마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를 ‘모계중심의 대안가족 형성기’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어떤 단서를 달아야만 한다. 미라, 무신, 선경이 ‘엄마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엄마들은 근대적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모성’과는 매우 거리가 먼 엄마들이다. 그녀들은 여성적 섹슈얼리티의 억압을 대가로 보장 받을 수 있는 가부장제 하의 어머니(가모장(家母長))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조신했던 미라는 무신에게 감염되어 질펀해졌고, 정상적인 엄마가 아니어서 자신의 엄마를 미워했던 선경이 엄마를 받아들인 이후에는 그 엄마처럼 살고 있다. 소녀 채현은 자신에게 엄마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미라와 무신을 ‘마녀들’ 또는 ‘엄마들’이라고 부르는 채현), 소년 경석은 자신에게 엄마가 없다고 생각한다(엄마이자 누나인 선경을 ‘구질구질’하다고 말하는 경석).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정상적인 가부장제의 표상 안에 갇혀있던 소년 경석이 그 가부장제 외부의 풍요로움 속에서 ‘헤프게’ 된 소녀 채현을 받아들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즉 한 ‘찌질남’의 정서적 성장기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 <가족의 탄생>이 꿈꾸는 새로운 가족윤리의 핵심이 있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