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타인의 타인이자 서로의 자신에게

[칼럼]타인의 타인이자 서로의 자신에게 대표 이미지

어떤 일이든지 시간이 지나면 물이 고이듯 발전이 정체되고 때로는 본의와 다르게 퇴보의 길을 걷게 된다. 한 개인의 삶도 그러하고 국가도 그러하고 사회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러한 성찰적 인식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도 않고 일정한 시간을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일정한 시간이 쌓이고 그 속에서 조금씩 문제가 누적되어 언젠가는 임계점에 다다를 때 문제가 불거지게 되고 해법을 찾기 시작한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하고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이미 고칠 수 없는 단계에 다다르기도 한다. 이를 인식하는 것이 쉽지도 않지만 스스로 문제점을 알아내기란 더더욱 어려운 법이다. 결국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보다 객관적으로 문제점을 알아나가게 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타인의 타인이자 서로의 자신이므로 이 관계망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서 보다 나아지려는 진보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은 예전처럼 안녕하십니까? 식사는? 등의 생존적 가치에 대한 물음보다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보셨습니까? 라는 사유적 관계망의 형성과 유지가 삶의 이유나 가치를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독립영화도 이런 틀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재 어떤 길을 가고 있으며 지향점이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좋은 경로를 확보하고 있는 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기의 가치를 드러내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독립영화는 그것을 드러낼 기회가 여전히 부족하고 또 그것을 쉽고 대중적으로 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것은 비단 제작비의 조달이나 배급여건이 좋지 않다는 등의 일반적인 측면의 분석이라기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혹여나 왜 만들고 있는 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아닌지 타인의 집단적 실체인 관객이라는 분명한 대상에 대한 파악이 없는 공허한 자족적인 영화들이 아닌지 등 여러 고민이 녹아든 영화로서의 독립영화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독립영화가 예전처럼 거대한 담론을 담거나 사회비판의 선봉에 서거나 하는 역할들은 상당히 줄어들었고 자연스러운 결과로 사회 참여적 영화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재의 영화들이 사라져도 좋을 만큼 우리 사회가 태평성대가 아니듯 현실에서 이러한 영화들에 대한 요구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제작방식을 답습하는 형태가 아니라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동일한 문제의식도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듯 독립영화도 이 시대의 관객들이 사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자족적 이슈파이팅이 아니라 다수가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그 지점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과연 지금의 독립영화는 이런 요건들을 갖추고 있는지 자문해 보고 싶다. 



사회가 팍팍해지면 질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일상의 피로감은 가중된다. 이것이 영화라는 상품과 만나는 지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 피곤함을 해소해 줄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겠지만 특히 영화가 상품으로 기능할 때 관객들은 일상의 피로감을 조금이나마 식혀주기를 원한다. 사회적 현상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보다는 지친 심신을 위무해 줄 그런 역할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는 할리우드처럼 오락상품으로서의 영화라는 역할이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배경으로 독립영화는 자신의 위치를 설정해 보아야 한다. 



독립영화에서 거대담론을 다루는 부분이 줄어들자 이 자리를 일상이 파고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꽤나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지만 이 일상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자신의 프리즘을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극히 일상적이거나 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사고의 틀 속에서만 제시되곤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면 우리가 만드는 독립영화가 과연 타인 또는 관객이라는 거울을 잘 들여다본 결과인가를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자신만의 공허한 메아리로 그친다면 그리하여 관객으로부터 독립되어버린 외딴 섬과 같은 영화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여기에 시장 상황을 비롯해 다양한 핑곗거리가 있긴 하겠지만 구차한 변명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 대중의 지친 일상에는 여러 정치·경제적 상황이 근저에 자리하겠지만 이 일상의 위로가 되지 못하는 영화와 할리우드라는 거대 상품으로서의 영화가 오락을 부추기는 상황까지 겹쳐진 이 상황은 더욱 영화를 한 측면으로만 몰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선정이 불분명한 독립영화가 양산된다면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누구도 만족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들의 독립영화들이 사실은 자신을 가장 잘 모르고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가 아닐까라는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오늘의 독립영화는 자신이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동시에 가장 잘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타인이라는 관객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