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영진위와 독립영화, 지난 시간들
정말 몰랐다. 일 년에 한 번꼴로 쓰는 칼럼에 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지난 칼럼들을 돌아보노라니 새삼스럽기도 하다. 2010년 5월 조희문 전 영진위원장이 주도한 ‘독립영화 관련 기관 위탁 및 지원 사업 파행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 뒤, 이듬해 영진위 직영관 인디플러스가 문을 열 즈음 쓴 칼럼에서도 “연이어 영진위를 언급하게 될 줄을 몰랐다”고 나는 썼다. 독립영화전용관 위탁사업 주체를 인디스페이스에서 시네마루로 변경한 과정은 물론, 수행평가 결과가 ‘미흡’했던 시네마루 운영에 대한 어떤 평가도 없이, 당시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었던 유인촌 씨 말 한마디에, 영진위 직영으로 급작스럽게 프로그래머도 없이 개관한 인디플러스가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2011년 4월에 쓴 글에서 인디플러스 출범에 우려 섞인 기대를 표했지만, 기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구경꾼 심정이었다. 나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도 배급활동가도 아닌 관객일 뿐이니, 직영관이 정 마음에 안 들면 영화제에서 부지런히 챙겨보면 되려니 여겼다.
기대와는 달리(?) 인디플러스는 제법 잘해 나갔다. 개관 뒤 부임한 허경 프로그래머는, 시네마루를 보이코트했던 독립영화인들 사이에 팽배했던 영진위를 향한 불신을 녹이려 열심히 뛰었고, 스태프들과 함께 정성스레 기획전과 상영회를 꾸렸다. 개관한 지 일 년 남짓 지나자 스태프들이 노력한 결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독립영화 공동 지대였던 서울 강남권에 인디플러스를 중심에 둔 관객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또, 예산 걱정을 덜 해도 되는 운영 안정성 덕에, 비대중적인 문제작들도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2012년 5월에는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도 돌아왔다. 예산 일부를 영진위에서 지원받는 성북문화재단 아리랑 시네센터까지 제 몸에 맞는 옷을 찾듯, 지역 공동체와 관객을 위한 독립영화전용관 역할을 발견하는 실험을 따로 또 같이 해나갔다. 독립영화 특별전 프로그램을 상영하는 한국영상자료원이 개봉작을 주로 거는 세 극장을 보완해 주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운영위원으로 2011년 6월부터 인디플러스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며 겪은 첫 시련은 2011년 12월 개봉한 <잼 다큐 강정> 인디플러스 상영불허 사건이었다. 영등위 심의를 문제없이 통과하고 영진위 소위원회에서 예술영화로 인정받은 작품을 ‘정책적 고려’ 때문에 직영관 인디플러스에서만 틀 수 없다는 것이, 운영위원회 상영 의결 실행에 제동을 건 영진위의 입장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무거운 사례로 안팎의 비난이 거세지자, 영진위는 “인디플러스 상영을 불허한 적은 없고 미루었을 뿐”이라고 말을 바꾸며 뒤늦게 상영불허를 철회했다.
두 번째 고개는 결국 넘을 수 없었다. 인디플러스 2주년이 다가오면서, 모두 계약직이던 스태프들의 고용 문제가 불거졌다. ‘공기관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는 새 정부 시책에 걸맞게 전원 무기 계약직 전환을 요구했지만, 부산 이전을 앞두고 있던 영진위는 서울에 잔여 인력을 많이 남길 수 없어 인디플러스를 또다시 민간 위탁할 예정이며 ‘인사, 예산 및 경영평가 등 경영상의 이유’ 때문에라도 인디플러스 스태프들을 더 이상 직접고용할 수 없다 했다. 영진위는 계약 해지를 빌미로 허경 프로그래머를 해고(법률 비전문가인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귀책사유가 없는 노동자의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을 인정하지 않고 계약 만료 때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하는 것을 불법으로 보는 판례가 많았다)했고, 나머지 스태프들을 파견직으로 전환하고 2~3개월씩 근로 계약을 기형적으로 연장하며 2013년 극장 운영을 파행으로 몰고 갔다. 이토록 불안한 노동조건을 조성하는 핑곗거리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적용 외에도, 2013년 하반기 중 ‘독립영화 배급지원센터’ 재설립, 배급지원센터 주체에 인디플러스 사업을 위탁하겠다는 독립영화전용관 사업변경안을 들고 나왔다. 조직 운영과 정원?인사 관리에 관한 사항들을 영진위가 임의로 정할 수 없고, 기획재정부가 정한 경영지침에 따라야 한다지만, 공공기관의 조직 및 인력 운영에 대한 경영지침은 직영 결정 전인 2007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원승환, 「한국영화 블랙박스-2년 전 약속은 공수표였나」, 씨네21 905호). ‘독립영화의 안정적 상영 및 활성화 기여’를 목적으로 조직 및 인력이 허용하지 않지만 (아무도 바라지 않던) 직영에 나섰고, 2년 동안 당면한 고용 문제를 해결할 노력은 전혀 않고 때가 오자 스태프들을 영진위에서 내친 뒤, 부산에 이사하게 되었으니 귀찮은 혹 떼어 내듯 극장 사업도 정리하겠다는 속내로만 비쳤다. “더 이상 직영 의지도 능력도 없는 영진위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의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아 동료 운영위원들과 사퇴의 변을 발표하고 인디플러스 운영위원회를 그만두었다. 극장에서 자주 뵙던 관객들과 스태프들께 죄송스러웠지만, 법적 지위가 보장된 영진위 소위원회가 아니라 자문기구에 불과한 전용관 운영위원회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독립영화 ‘배급지원센터’ 사업명은 ‘유통지원센터’로 바뀌었고, 2013년 7월 4일 영진위는 ‘독립영화유통지원센터 설립 제안 공청회’를 주최했다. 한데, 9월 예정이라던 위탁 전환이 진행되는 기미가 영 없었다. 11월에야 소식을 들으니, 2013년 중 인디플러스 사업 민간 위탁 전환 및 유통지원센터 설립 자체가 취소되었단다. 뿐만 아니라, 2014년 영화발전기금에도 독립영화유통지원센터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고, 독립영화전용관 사업 예산도 동결되었다 했다. 9월에 전임 위원들의 임기가 끝난 영화문화다양성소위원회는 11월까지도 신임위원을 임명하지 않고 방치된 상태였다. 독립영화단체, 영화제들이 지원받는 민간단체역량강화지원 사업도 ‘일몰제’ 적용으로 해마다 예산이 줄고 있는 형편이다(이 와중에 부산시가 설립한다는 아시아영화학교 국비 예산 25억 원을 내년도 영화발전기금에 편성하며 기획재정부가 정부예산 예비심사를 완료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갈팡질팡하며 주먹구구식으로 버티는 영진위 사업을 2년쯤 나름대로 가까이서 지켜본 나는, ‘독립영화 진흥정책’이 과연 실존하는지 심각히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립영화유통지원센터 설립 논의에 참여했던 독립영화협의회, 영화공동체,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인디포럼 작가회의,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독립영화단체들도 유통지원센터 예산 미반영 등을 우려하며, 지난 11월 20일, 2014년 독립영화정책계획 질의서를 영진위에 발송한 뒤 김의석 위원장을 만났다. 이에 영진위는 2014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와 독립영화유통지원센터 사업 계획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디플러스 프로그램 부분과 시설운영부분(영사, 매표)을 분리하여, 시설운영부분은 지금 인디플러스가 세 들어있는 롯데브로드웨이시네마에 위탁하”겠단다. 이미 프로그래머 해고 뒤 인디플러스 프로그램 부분을 별도 위탁하며 파행 운영 중인데, 멀티플렉스인 롯데브로드웨이시네마에 영사·매표를 찢어서 위탁한다면 극장은 어찌 될까? DCP 디지털 영사로 일원화된 멀티플렉스 상영과 다양한 상영포맷을 지닌 독립영화 상영이 다른 만큼, 독립영화전용관 상영에 매진하는 영사팀은 지금처럼 따로 있어야 마땅하다. 또, 독립영화 관객 커뮤니티를 공들여 성장시킨 인디플러스 운영팀이 멀티플렉스 서비스 매뉴얼로 운영되는 브로드웨이시네마에 흡수된다면, 독립영화 관객을 위해 특화된 서비스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독립영화단체들은 12월 5일 배포한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정책 설정 방향에 대한 독립영화인 공개의견서’를 통해, 영진위의 독립영화전용관 분리 위탁 운영안이 올해 계속된 독립영화전용관 운영 파행과 유통지원센터 사업 불발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독립영화인과 관객을 만족시키고 독립영화 문화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는 운영안과 종합적인 해결책을 다시 요구했다.
2013년 한국 영화관객 2억 명을 돌파하게 한 큰 동력이 영진위 직원들의 오랜 헌신과 열정임을 그래도 나는 여전히 믿는다. 내년 시행 예정이라는 독립영화 전문펀드 부문을 제외하면, 영진위 사업예산에서 1할 남짓을 차지할 뿐인 독립영화 진흥사업의 묵은 숙제들을 풀기 위해 부산에서 많은 분들이 고민 중이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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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3년 12월 23일자로 작성되었다. 그 뒤 국회가 최종확정해 통과시킨 2014년 정부예산안에는 독립영화유통지원센터 사업예산이 역시 반영되지 않았고, 영진위 9인위원회는 인디플러스 프로그램/시설 운영 분리위탁안을 승인했다. 분리위탁은 운영 분야 스태프들의 기존 계약이 끝나는 5월 이후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