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형사
이명세, 2005
내 인생의 한국영화 중 궁극의 한편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다. 시각·청각·이야기 등 영화의 전 층위에서 ‘종합적’으로 그만한 감흥·충격을 안겨준 우리영화는 아직까지는 없다. 정서적 측면으로 한정하면, 그것은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1990)이다. 이 땅의 보통사람들의 구질구질한 일상을 그만큼 그럴 듯하게 극화한 사례와 조우하질 못했다. 한편 고심 끝에 선정해 대중음악 전문 사이트 www.izm.co.kr의 CINEMA & OST에 발표한 ‘2000년대 한국영화 베스트10’ 1위작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다. “시대사와 개인사의 환상적 결합! 난 여태 이 영화만큼, 치사할 대로 치사하고 파쇼적일 대로 파쇼적이며 남루할 대로 남루했던 1980년대 우리 사회를 실감 넘치게 포착, 묘사한 예를 기억하질 못한다.”
‘한국영화 걸작선’이란 취지를 감안하면 따라서 이 지면에서 소개해야 할 영화는 위 셋 가운데 하나여야 마땅할 테다. ‘2000년대 이후’로 그 시기를 확대시킬 경우, <살인의 추억>과 정상 자리를 놓고 큰 다툼을 벌일 이창동 감독의 <시>거나. 하지만 끝내 그 네 걸작 중 한 편을 택하긴 싫었다. 이미 다뤘거나, 너무 ‘뻔해’ 싱거운 선택으로 여겨질 수 있어서였다. 또 다른 함의를 띨, 다소는 의외적인 선정을 하고 싶었다. 그 결과, 장고 끝에 고른 그 한 편은 <형사 Duelist>(2005)다. 위 ‘2000년대 한국영화 베스트10’에서 <살인의 추억>과 <올드 보이>(박찬욱, 2003), <망종>(장률, 2006),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2002)에 이어 5위에 위치시킨, 이명세 감독의 기념비적 문제작!
<형사>는 평소 ‘매혹’Attraction/s이라는 프레임으로 영화는 물론 오락·예술 전반을 즐기고 평하는 내 관점·접근에 완벽히 부응했다. 영화에서의 매혹은 시각ㆍ청각ㆍ내러티브ㆍ주제 등 전 층위에서 관객을 끌어당기는, 그로써 관객에게 감각적ㆍ감정적ㆍ심리적ㆍ지적…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들을 가리킨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해왔지만 <형사>는 무엇보다 시ㆍ청각 층위에서 압도적 매혹을 뿜어내는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 텍스트다. 주ㆍ조연 배우들의 호연 등 상투적 덕목들에 대해선 언급하지 말자. 단적으로 슬픈 눈(강동원 분)과 남순(하지원)의 검투에선 가히 발레적 아우라가 발산된다. 수준급 완급의 리듬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검무는 황홀경 그 자체다. 더욱이 그 함의는 외연적 칼싸움을 넘어 맺어질 수 없는 두 연인 간의 사랑 행위다. <와호장룡>(이안, 2000)의 그 유명한 대나무 시퀀스에서의 대결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잘 알고 있다. <형사>가 내러티브와 연관해 적잖은 평자들로부터 크고 작은 비판·비난 세례를 적잖이 받았다는 것쯤은. 후에 영평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수상 등 크고 작은 호평을 받기도 했으나, 영화는 선보이자마자 비평적으로 최악에 가까운 혹평ㆍ질타를 받았다. 흥행적으로도 고작 1백만 선을 넘는데 만족해야 했다. 저주에 가까운 악평의 요지는 “그림은 좋은데 이야기가 영 아니”며 “스타일 과잉”이라는 것이었다. 실패한 화제작들에 으레 쏟아지곤 하는, 식상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한 천편일률적 단죄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숱한 비판·비난들에 동의하진 않는다. 우선 <형사>의 내러티브가 엉터리, 라는 등의 단죄부터가 그렇다. 영화는 조선 왕조를 배경으로, 가짜 화폐 유통 사건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여느 그렇고 그런 대중영화들과는 달리 영화는 ‘사건’에만 집중하질 않는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2001), 장훈 감독의 <고지전>(2011) 등이 그런 것처럼, 사건보다는 캐릭터들의 ‘사연’에 방점을 찍는다. 플롯 위주의 단순한 무협 액션물에 그쳤을 수도 있을 영화는 그럼으로써, 여형사 남순과 무명의 자객 슬픈 눈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숙명적 대결을 그리는 멜로 시대극으로 비상한다.
두 연인을 축으로 전개되는 메인플롯에 곁들여진 일련의 서브플롯들이 영화의 입체성을 배가시킨다. 남순-안 포교(안성기)와 슬픈 눈-병판(송영창) 간의 유사부성 드라마 등이 그것들이다. 이렇듯 복합 플롯의 영화는 기-승-전-결 등 주류 영화 특유의 도식적 구성을 따르는, 손쉬운 노선을 걷지도 않는다. 도입부부터가 그렇다. 설정 쇼트ㆍ시퀀스를 통해 내러티브의 발단에서 출발하지 않고, ‘사건의 중심으로’In Medias Res 전격 뛰어들어 스토리를 추동시킨다. 따라서 애초부터 안일한 영화보기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도입부 이후 펼쳐지는 사건들은 시간적으로 얽히고설키어,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두뇌를 적절히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일정한 지적 노력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야기가 엉망이라고? 그처럼 관객의 능동적ㆍ적극적 참여를 유인하는 지적 작업이 요구되는 멜로드라마를 가리켜? 천만의 말씀, 이다. 그런 비난은 내러티브의 원 재료로서 스토리와, 그 스토리의 구성ㆍ배치인 플롯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내러티브적 몰이해·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공산이 크다. 역설컨대 <형사>처럼 지적 자극ㆍ감흥을 선사하는 러브스토리는, 국적 불문하고 흔치 않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1974>), 페드로 알모도바르(<그녀에게, 2002)>, 이창동(<오아시스, 02>) 등의 극소수 예가 떠오르긴 해도…….
‘스타일 과잉’도 그렇다.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리스트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장편 데뷔작 <개그맨>(1988)부터 최근작 <M>(2007)에 이르기까지 그만의 연출 스타일로 개성 만점의 영화세계를 구축해온 문제적 명장이다. 그 정점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와, 이 영화 <형사>가 위치한다. 스타일 과잉 운운하며 <형사>를 비난하는 건 따라서 이명세의 영화세계를 부인하는, 몰상식적 처사로 비칠 공산이 크다. 스토리텔링보다 시·청각적 연출에 보다 더 큰 공을 들였다 한들 그게 어찌 스타일 과잉이며 비난거리가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형사>와 여로 모로 비교될 법한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도 스타일 과잉이라 문제란 말인가? 2000년대 이후 세계 영화사의 그 기념비적 걸작 무협 멜로물이?
사운드 연출에 세심히 주목하면 <형사>의 매혹은 한결 더 커진다. 영화는 음악은 말할 것 없고, 캐릭터들의 대사 및 음향효과마저도 음악적 리듬에 실어 표현한다. 촛불의 떨림, 다시 말해 묵음Silence의 순간까지도 사운드 이펙트처럼 구현한다. 놀랍지 않은가. 그 정교한 사운드 연출에서 <형사>와 비견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우리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 정도다.
<형사>의 더 야심찬 매혹은 특별한 편집으로서 몽타주에서 감지된다. 무용적 이미지와 음악적 사운드 사이의 충돌·조화미는 단연 주목할 만한 값진 성취다. 세르게이 M. 에이젠슈테인이 주창한 바, ''''''''''''''''''''''''''''''''''''''''''''''''''''''''''''''''내적 몽타주''''''''''''''''''''''''''''''''''''''''''''''''''''''''''''''''Internal Montage는 가히 압권이다. 일찍이 지면이나 강의 등에서 피력한 바 있듯, 코믹하거나 슬프거나 공포스럽거나…대중영화는 대개 단일 쇼트 내에선 어떤 감정 상태를, 하나의 주된 톤으로 표출하기 마련이다. 관객을 영화가 원하는 특정 감상 모드로 몰입시키고, 그로써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형사>는 그러나,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등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쇼트 안에서 복수 톤을 부여하는, 탈 대중영화적 실험을 감행한다. 그 실험이 긍정적 성공으로만 귀결된 건 아니어도, 좀처럼 맛보기 힘든, 독특한 너무나도 독특한 영화체험을 안겨주면서 말이다.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남순의 성격화Characterization와, 튀는 캐릭터 남순을 예측 불허의 해석력으로 소화한 하지원의 연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흥미롭게도 하지원은 코믹과 멜로, 액션 연기를 일거에 선보인다. 영화 전체에서만이 아니라 동일 쇼트 안에서 멜로로 시작해 액션으로 넘어가 코믹 연기로 마무리하곤 하는, 전례 없는 고난위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이만하면 ‘한국영화 걸작선’으로 <형사>를 고른 이유가 어느 정도는 전달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