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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벽이 없는 영화: 확장영화와 필름 퍼포먼스 입문

[칼럼]벽이 없는 영화: 확장영화와 필름 퍼포먼스 입문 대표 이미지

1960년대 중반, 미국의 아방가르드 영화작가 스탠 밴더빅은 ‘확장영화’(expanded cinema)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그가 구상한 확장영화란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 비디오테이프 등 당대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시청각 장치들을 통합한 ‘비(非)음성적이고 국제적인 그림-언어’로 다분히 테크노-유토피아적인 전망에서 비롯된 개념이었다. 더불어 그는 자료들을 기록, 저장, 위성으로 전송 및 수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류 역사의 모든 양상들을 담은 수천 개의 이미지들을 내부 벽면에 동시에 영사할 수 있는 반구(半球)형의 건축물을 고안하고 이를 ‘무비-드롬’(movie-drome)이라 불렀다. 밴더빅의 확장영화 개념은 오늘날로 치면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의 결합을 건축적 공간에 옮겨놓은 것으로, 그의 ‘인터미디어’(intermedia)적 지향은 진 영블러드가 1970년에 출간한 저서 「확장영화 Expanded Cinema」에서 보다 체계화되었다. 영블러드의 관심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실험한 휘트니 형제나 백남준 같은 예술가들에게 향해 있었다. 

영화적 제도 일반(제작, 배급, 상영, 관람)에 대해 의문을 품고 영화장치를 구성하는 요소들(필름, 카메라, 영사기, 스크린 및 영화관이라는 환경)의 구조와 물질성 자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1970년대 영국의 아방가르드 영화작가들(말콤 르 그라이스, 윌리엄 라반, 아나벨 니콜슨 등 ‘Filmaktion’ 그룹과 런던영화작가조합(London Filmmakers’ Co-Operative)의 작가들)은 그러한 요소들의 관습적 결합을 교란하거나 해체하고 또 재정의하는 고도로 형식적이고 구조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모더니즘의 입장에서 확장영화를 다시 정의했다. 확장영화 실천에서 퍼포먼스가 필수적인 것은 아님에도 멀티스크린과 더불어 가장 두드러진 기법처럼 여겨지게 된 것은 아무래도 이들의 작업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시기 영국 확장영화의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인 말콤 르 그라이스의 <호러필름 1번 Horror Film No.1>(1971)을 감상해 보기로 하자. 

 

 
[영상 1] <호러필름 1번 Horror Film No.1>(말콤 르 그라이스, 1971)
2010년 11월 11일 호주 브리즈번의 현대미술협회 공연 기록영상


역사적으로 볼 때 영화적 실천이 멀티스크린이나 퍼포먼스와 결합된 것은 이보다 훨씬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0년 경 라울 그리무앙-상송은 전 세계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10대의 동기화된 영사기로 360도 스크린에 투사하고 이를 열기구에 올라타 관람하게끔 하는 ‘시네오라마’(Cinéorama)라는 장치를 고안했고, 1927년 아벨 강스는 <나폴레옹 Napoleon>에서 나란히 놓인 3개의 스크린에 동시에 영사하는 대형화면 포맷을 실험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글루모프의 일기 Glumov’s Diary>(1923)와 르네 클레르의 <막간 Entr’acte>(1924)은 무대 공연 도중 상영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1960~70년대 영미권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일련의 확장영화적 실천에 몰두하기 전, 1950년대 초에 등장한 프랑스의 레트리스트들(이시도르 이주, 모리스 르메트르, 질 J. 울망 등)이 보다 과격한 퍼포먼스를 구상했다는 점도 지적해둘 필요가 있겠다. 울망은 <반개념 L’
anticoncept>(1952) 상영 시 기상관측용 기구를 스크린으로 활용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을 만지거나 올라타거나 심지어 자르고 지나가도록 했는데, 이는 영화관 매니저와 스태프, 그리고 실제의 배우 등이 벌이는 라이브 퍼포먼스(주로 관객으로 가장해 소동을 벌이는 것)와 영화상영의 결합을 구상하고 이를 통해 보는 행위와 보이는 대상의 분리를 폐지하고자 했던 르메트르의 ‘종합영화’(syncinéma)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전통적 영화개념에 도전하는 확장영화 실천과 퍼포먼스의 도입이 1960~70년대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관심사로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이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하나는 당대 아방가르드 영화 전반과 관련된 것으로, 특정한 예술적 매체의 속성을 그 매체 자체를 통해 탐구하고 비판한다는 모더니즘의 방법론에 입각해, 영화라는 매체를 이루는 구성요소와 기본 조건들(르 그라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질적 조건들’)을 영화 자체를 통해 탐구하고 비판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이러한 탐구와 비판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몇몇 작가들은 영화라는 장치가 결코 자명하지 않은 것임을 폭로하는 해체적 실천(필름, 영사기, 스크린의 조합을 기존의 방식과 달리하는 상영이나 퍼포먼스)이나, 특정한 영화적 구성요소의 물성(物性)에 대한 ‘외과의학적’ 집착(필름의 감광유제 층이나 영사기에서 방사되는 빛 자체에 대한 탐구)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더불어 ‘과정으로서의 예술’이라는 모더니스트적 개념 또한 영화작가들이 퍼포먼스적 요소를 작업에 도입하는 데 자극제가 되었을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확장영화 가운데 하나인 안소니 맥콜의 <원뿔을 그리는 선 Line Describing a Cone>(1973)에서 관람객에게 볼거리로 제공되는 것은 스크린에 비친 이미지가 아니라 영사기에서 방출된 빛이 전시공간에 조각 같은 형상을 생성해내는 과정이다. 

 

 

[영상 2] <원뿔을 그리는 선 Line Describing a Cone>(안소니 맥콜, 1973)
2011년 25FPS 국제실험영화제 공연 기록영상


다른 하나는 영화 이외의 오디오비주얼 매체, 특히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텔레비전과 1960년대 중반에 출시된 소니 포타팩과 같은 비디오카메라로 인해 필름, 프로젝션, 영화관,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하는 영화장치가 필연적이기보다는 우연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필름은 자기테이프로 대체될 수도 있는 것이며, 프로젝션은 디스플레이로 대체될 수도 있는 것이며, 영화관 또한 통상의 연극적 건축의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1960~70년대 영미권의 아방가르드 영화작가들이 텔레비전과 비디오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당대의 ‘뉴미디어’가 그들로 하여금 영화가 자신만의 고유한 속성을 지닌 독자적 매체라는 생각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고, 앞서 언급한 해체적 혹은 ‘외과의학적’ 방향의 작업을 자극했으리라는 가정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한국에 확장영화 작업이 대대적으로 소개된 것은 2004년에 개최된 제1회 서울실험영화페스티벌(현재는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을 통해서다. 말콤 르 그라이스, 윌리엄 라반, 질 이덜리, 리스 로즈, 안소니 맥콜, 크리스 웰스비 등의 1960~70년대 작업들이 소개되었는데, 멀티스크린을 활용하거나 상영 환경을 독특하게 구성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작품들, 그리고 영화제의 초청으로 방한했던 르 그라이스의 열정적인 강의는 나로 하여금 영화라는 불안정한 대상에 대해 다시 숙고하게끔 만들었다.) 영화적 퍼포먼스 작업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문화예술 기획자 및 창작자들의 네트워크인 ‘무잔향’(無殘響)이 기획해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실험영상 및 실험음악 공연을 통해서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필름 퍼포먼스인 가이 셔윈의 <거울을 든 남자 Man With Mirror>(1976)와 여러 대의 영사기, 거울, 필터 및 전자음향을 활용해 극도로 사이키델릭한 환경을 창출해내는 프랑스 그룹 메탐킨(Metamkine, 1987년에 결성)의 <간섭의 셀룰로이드 Cellule d’intervention>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이 공연되었다. 

 

 

[영상 3] <간섭의 셀룰로이드 Cellule d’intervention>(메탐킨 그룹) 
2011년 8월 28일 독일 함부르크 공연 기록영상


영상매체를 활용한 공연이나 전시는 이제 한국에서도 익숙한 풍경이 되었지만, 1960~70년대 영미권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에 의해 정립된 확장영화와 필름 퍼포먼스 실천을 명확히 의식하면서 이의 현재적 의의를 타진하는 한국 작가들은 한 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다. 필름의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변형, 파운드푸티지의 활용, 멀티스크린 영사를 실험하면서 홍철기, 이옥경 등의 즉흥음악가들과 협업하고 있는 이행준(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프로그래머)과 안무가 나연우와의 협업으로 <대화 Conversation>(2013)를 연출하는 한편 다른 작가들의 ‘댄스 필름’들을 기획하기도 한 이장욱(핸드메이드 필름 랩 스페이스 셀 대표)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들이 내놓은 작업 가운데 이행준의 <필름 워크 Film Walk>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2011년 문래예술공장에서 초연된 이후 국내외 곳곳에서 공연되어 온 <필름 워크>는 영사기에 걸린 16mm 필름의 한쪽 끝을 작가가 손으로 잡고 길게 이어 뽑으면서 공연 장소에서 이리저리 거니는 간단한 퍼포먼스다. 이 퍼포먼스의 기술적 원리는 간단하다. 영사기의 옵티컬 사운드헤드에 필름의 사운드트랙이 아니라 퍼포레이션(perforation: 필름 가장자리에 규칙적인 간격으로 뚫린 구멍)이 물리게끔 해서 퍼포레이션 자체가 일종의 광학 사운드트랙으로 기능하게 한 것이다. 여기서 영사기를 ‘디제잉’(DJing)하는 공연자인 이행준은 배우이자, 감독이며, (아무 것도 영사하지 않는) 영사기사이고, 동시에 후반작업실의 기술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상 4] <필름 워크 Film Walk>(이행준, 2011) 
2014년 2월 22일 프랑스 낭트 공연 기록영상 (즉흥연주: 홍철기)


이상 (너무) 간략하게 확장영화와 필름 퍼포먼스에 대해 개괄해 보았다. 이쯤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오늘날 이러한 반(反. anti-)영화적 혹은 반(半. semi-)영화적 실천들은 미술, 공연, 음악 등의 영역에서 적잖이 수용되고 있다. 그것이 현재적 체험의 강렬함을 더하고자 수행성(performativity)을 강조하는 오늘날 예술의 욕망 때문인지, 어느덧 예스러운 풍미를 띠게 된 장치에 그들의 의고(擬古) 취향과 페티시즘이 향한 탓인지, 기록된 것의 재생에서 즉흥적인 것의 작의(作意) 없는 생성으로 향하는 길의 동반자를 얻은 기쁨 때문인지, 혹은 그 반대로 부분적이나마 일시적인 것을 극복케 하는 기계장치의 힘을 필요로 해서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이러한 실천에 무관심하고 배타적인 것은 정작 영화계라는 점이다. 객석 한복판에 수동으로 작동되는 영사기를 두고 <벽 허물기 Demolition d’un mur>(1896)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한 편의 짧은 필름을 정방향과 역방향으로 차례로 돌려 관객을 놀라게 했던 뤼미에르 형제는 어떤 영화적 실천의 기원적 형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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