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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반달곰

이정홍, 2012

[한국영화걸작선]반달곰 대표 이미지

원석은 스스로의 시간을 멈춘 듯 보인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아주 오랜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게으르고 둔하며 단지 몸을 웅크린 채 추호의 성장도 거부하듯 아주 느슨하게 자아를 묶어놓은 시커먼 잉여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피시방 구석에서 자신을 성찰 할 어떤 기회도 거부하며, 스스로 찾아야 할 그 다음의 길도 걷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온라인 게임 안에 서식중이다. 그런 원석에게 이제 어쩔 수 없는 “알바”의 인생이 시작된다.

원석의 누나는 원석이 혹여 추위에 고생이라도 할까봐, 혹은 그의 느리지만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기특한 듯 원석에게 겨울용 파카를 사준다. 영화는 바로 이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파카를 입은 원석이 누군지를 궁금해 하며 관객이 그의 모습을 서서히 따라가면 관객은 곧 원석의 무능함과 답답함에 지겨움을 느낄 수 도 있다.

누나의 애인이 주인으로 있는 치킨 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원석. 그러나 그는 입으로 떠들던 것과는 달리 스쿠터 하나 잘 몰지 못한다. 주소를 하나 찾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며 재빠르게 움직이며 세상의 주문을 감당할 깜냥도 없어 보인다. 추운 겨울 우리의 반달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잠에서 이제 깨어나 보려 애쓴다. 그는 알고 있다. 누나의 마음을. 그러나 그의 시작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는 스쿠터의 열쇠를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제대로 돌리려 하지만 그가 믿어주길 바라는 어른들은 그가 여전히 겨울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처받은 반달곰. 이정홍 감독의 대범한 중편 데뷔작 <반달곰>은 그런 영화다. 

세상은 열아홉, 스물의 “소년”들에게 단지 그들이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른의 책임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하지만 어떤 어른도 그들에게 어른이란 무엇인지, 세상의 책임이란 어떤 권리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년들은 세상의 1퍼센트에 자신이 포함되어지지 않는 그 순간, 자신에게 허용된 생산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그 어린 시기에 부유하는 혹은 정지된 자신을 돌아볼 휴식의 시간도 갖지 못한다.

그래서 <반달곰>의 원석이 그 모든 것들을 배신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바깥으로 도망을 가버려도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원석은 다시 돌아온다. 그는 결국 그를 아껴주는 사람 곁으로 돌아가 투박하게 어른들에게 말한다. “이제 잘 할게요.”배달용 상자를 접으며 내뱉는 원석의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저리도 훌쩍 성장하는 녀석의 모습이 안쓰러웠기도, 혹은 아파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이정홍의 <반달곰>은 그래서 아픈 영화다. 감독은 두어 발자국 떨어져 원석을 보여주려 하지만 거칠지만 송곳 같은 대사와 심사숙고한 장소의 이미지들로 인해 우리는 감독과 캐릭터의 거리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게 된다. 

아직 장편도 단편도 아닌 그 사이의 시간인 <반달곰>은 비범함과 평범함이 공존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장면은 기적처럼 놀랍고 어떤 장면은 학생영화처럼 단정적이고 어떤 장면은 단지 거칠기만 하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심장이 흔들리는 느낌을 갖게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반달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시작하는 감독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며 또한 그 다음 작품을, 그의 장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2012년 내가 뽑는 최고의 다음 세대의 영화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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