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종이 영화잡지 「씨네21」의 편집장 1년
「씨네21」 편집장을 맡게 된 지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이즈음 ‘나는 「씨네21」 편집장이다’라는 거창한 제목의 원고를 수락하게 된 것은 순전히 한국영상자료원과 그 전략기획팀 유성관님의 부탁 때문이다. 모든 컨텐츠가 인터넷의 디지털 파일로 유통되는 시대에 여전히 ‘필름’을 발굴하고 수집하고 보관하는 한국영상자료원과, 고집스레 매주 정해진 제작 일정에 맞춰 종이 잡지를 20년째 발행해오고 있는 「씨네21」의 고독한 운명이 서로 닮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말, 한국영상자료원과 「씨네21」은 ‘「씨네21」 보유 영화 및 영화인 사진 자료 기증 협약식’을 가졌다. 「씨네21」 창간호(1995년 5월)부터 500호(2005년 5월)까지 10년간 찍은 사진 약 30만 점을 영상자료원에 기증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라고 슬쩍 광고 멘트도 곁들어 본다. ‘파일’을 다루는 ‘클릭’의 시대에 ‘물질’의 촉감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그 물질을 다루는 사람들끼리 연대해야 한다는 요구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종이 영화잡지 시장에 가장 오래 발을 담그고 있는 영화 기자가 됐다. 2000년부터 이제는 없어진 월간지 「키노」에서 3년, 역시 이제는 없어진 주간지 「필름2.0」에서 4년을 일했고, 여전히 버티고 있는 주간지 「씨네21」에서 새해 들어 10년째 일하게 된다. 그래서 오래전 「씨네21」에 들어왔을 때 한 감독은 “이제 네가 「씨네21」만 망하게 하면 임무 완성”이라며 “폐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라”는 말도 안 되는 <무간도> 스러운 주문을 하기도 했다. 웃자고 한 얘기지만, 종이 잡지의 거대한 쇠퇴의 중심부에서 겪은 일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연일 대책회의를 가졌고 비상 태스크포스팀 운영에도 몸담아 봤다. 하지만 그 거대한 물길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월간, 주간지 다 합쳐서 한때 7개의 영화잡지가 경쟁하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이제 영화 전문지라고 해서 딱히 인터뷰 시간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섭외가 손쉬운 것도 아니다. 그래도 영화를 영화로 다루는 영화 전문지가 끝까지 버텨줘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부정하려 해도 종이 잡지를 사서 읽는 사람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고 표현했지만, 이제는 그런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사람들의 수 자체가 많지 않다. 30만 명이 넘는 팔로워와 ‘페친’은 유료 독자와 별개로 존재한다. 물론 그 수치 또한 대단하긴 한 것이다. 그나마 「씨네21」은 이른바 ‘충성 독자’라 불리는 고정 정기독자층이 탄탄한 편이지만, 사실상 잡지의 많은 글들이 여러 포털 사이트로 업데이트되는 상황에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여러 다른 일간 신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미 인터넷으로 많은 기사를 무료로 보는 시대에 유료 독자로 남아준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연예’ 면으로 완전히 흡수되어버린 듯한 ‘영화’ 기사에 있어서도, 원래 오용이나 남용을 뜻하는 이른바 ‘어뷰징’ 기사의 폐해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검색을 통한 클릭 수를 늘리고 인기검색어로까지 올리기 위해, 별다를 바 없는 내용의 기사들을 제목만 바꿔 무차별적으로 전송하는 행태를 말한다. 분명히 「씨네21」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인터뷰한 영화인 기사임에도 황당하게 뽑아낸 그 제목들을 보자면,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은 딴 사람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포털 검색의 조회 수 경쟁 속에 ‘실검’은 있지만 ‘진실’은 없다. 대중이 어떤 기사를 원해서 선택하기보다, 그냥 기사들을 무차별적으로 떠먹여 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배가 부르면 좋겠지만 늘 소화불량을 동반한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자, 핵심은 「씨네21」도 그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냉정한 현실이다. 이른바 영화 전문지의 존재 근거라 할 수 있는 덕후와 시네필도 만족시켜야 하고, 가십에 가까운 대중적인 최신 뉴스도 일목요연하게 담아내야 한다. 그러면서 언제나 변함없는 주된 관심사, ‘바로 지금의 한국영화’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이들이 이제는 유료 독자보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심지어 이제는 PC화면으로 기사를 보는 것도 낡은 행위라 치부되고 있다)로 접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 또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쨌거나 순수한 시네필과 영화 기자를 꿈꾸는 사람, 혹은 미래의 영화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는 얼핏 이상한 교집합으로 묶인 이들과 함께 운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응원했으면 좋겠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그들이 소극적인 독자로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이다. 우리끼리는 농담처럼 ‘꺼진 좋아요도 다시 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애정 고백을 해야 한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래야 디지털 시대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의 뒤주에 갇혀버릴 운명에 처한 지금의 영화를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