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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그 아름다웠던 농성장 - 밀양 다큐멘터리 <즐거운 나의 집 101>을 만든 이유

<즐거운 나의 집 101 (련, 2015)>

[칼럼]그 아름다웠던 농성장 - 밀양 다큐멘터리 <즐거운 나의 집 101>을 만든 이유 대표 이미지

<즐거운 나의 집 101>은 밀양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비교적 둘로 나뉘었는데, ‘불호’ 쪽에 선 사람들은 대체로 땅과 자연에 대한 할매들의 애착, 국가폭력 앞에 내던져진 그들의 한(恨)과 의식의 각성, 그리고 몸을 던져 막아내는 격렬한 투쟁 이야기를 밀양 영화에서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는 그런 내용이 거의 없다.

이 영화는 오히려 “캠핑 왔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산속 농성장의 즐거운 농성생활을 그리고 있다. 고립된 농성장을 기본적으로 휘감고 있는 긴장과 불안을 어느 정도 균형감 있게 담았더라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아쉬움은 남지만, 이 영화는 밀양 투쟁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투쟁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또 밀양에는 ‘할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외부세력’이라는 근거 없는 말이 왜 쉽게 타파되지 못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 영화는 밀양 주민만이 아니라 연대자들도 밀양 싸움의 주체라고 말하고 있다. 밀양 싸움은 다양하게 말해져야 한다. 나는 적어도 <즐거운 나의 집 101>이 ‘밀양 투쟁’의 ‘다양성 영화’의 테이프를 끊었다고 생각한다. 갖다 붙이자면 말이다.

이 영화 제목에 나오는 ‘101’은 송전탑 번호이자, 그 송전탑이 세워질 자리에 들어선 농성장 이름이기도 하다. 다 알다시피, 밀양에는 총 69기의 765kV 송전탑이 세워졌는데, 송전탑 번호로 치면 82~150번까지이다. 이 중 단장면 용회동 뒷산에 세워질(지금은 다 세워진) 101번 송전탑 부지가 이 영화의 중심 무대이고, 이 부지에 농성 움막을 짓고 살면서 여기를 지켰던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101번에 농성장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농성에 합류하러 처음으로 101번에 오르던 그 날 밤이 생각난다. 저녁 7시쯤이었지만, 초봄의 산속은 7시면 깜깜한 한밤중이었다. 한 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 손에는 랜턴을 들고 발밑만 겨우 비추면서 깜깜한 산을 혼자 오르면서도 전혀 무섭지 않았던 이유는, 내 딴에는 농성장을 지켜야 한다는 ‘투지’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투지는 얼마 안 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싸울 의욕이 없어진 게 아니라, 그런 전투적 자세는 농성에 별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전투적 자세가 별 도움이 안 되다니? 영화 <즐거운 나의 집 101>은 이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당시에 나는 고립된 산속에서 농성을 하면서 잘 해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투지’로 똘똘 뭉친 농성은 밥이나 겨우 지어서 밑반찬 두세 개로 끼니를 때우며 견디는 것이었다. 전쟁터이지 않은가? 더구나 물도 전기도 없는 고립된 산속이다. 물을 비롯한 생필품을 일일이 등짐을 져서 날라야 했으므로, 양치질이나 세수는 물론 설거지도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주민과 연대자들은 개미처럼 등짐을 지고 나르면서 끊임없이 전을 부치고 과일을 깎고 산 아래서 순대를 쪄오고 닭발을 삶아 왔다. 고등어와 석쇠를 사 와서 불을 피워 고등어 장작 구이를 해먹었고, 오리 백숙을 끓여 먹었다. 산에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삶의 안정이 있었고, 같이 밥해 먹으며 연대가 무르익었다.

누군가 기타를 들고 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곧 우리는 밤마다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그리고 농성장 주변에 널린 벌목한 나무들을 자르고 다듬어 멋진 카페를 만들었다. 날이 좋은 밤이면 이 카페는 훌륭한 야외무대가 되어주었고, 낮에는 차 마시고 수다 떠는 장소가 되었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농성 중임에도 우리는 문화생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101번 하면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 묵을 수 있게 끊임없이 움막을 손보고 화장실을 만들고 난로를 청소하는 등의 부지런함과 함께, 그늘에 모여앉아 기타를 딩동 거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바람이 잘 드는 곳에서 낮잠을 즐기는 한가로운 모습이다. 아무도 이거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고, 왜 거기 있냐고 여기 있으라고 구속하지 않았다. 할 일이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나서서 했지만, 할 일이 없으면 각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각자 취향대로 시간을 보냈다. 주로 밥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지만(남자보다는 여자가, 출퇴근하는 연대자보다는 상근하는 주민과 연대자가) 일도 안 하고 밥만 먹고 술만 마신다고 누구를 탓하지도 않았다. 하는 일이 없어 보여도 다들 무언가는 하고 있었기에. 재밌는 얘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거나, 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거나, 아니면 썰렁한 개그로 사람들을 웃겨주려 하거나. 

이렇게 101번은 평화로운 공동체가 되었다. 피가 마르는 긴장과 무료함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이 정신이 피폐해지지 않고 끝까지 잘 싸울 수 있었던 힘은 여기에 있었다. 국가를 상대로 지는 싸움을 하면서, 사람들은 알아갔던 것이다. 송전탑은 밀양을 넘어서는 탈핵의 문제이며, 탈핵은 일상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야 하는 싸움이란 것을. 송전탑은 반드시 세워질 것이지만, 우리는 그 이후의 싸움을 준비해야 하고, 그 싸움은 사람과 더불어 즐겁게, 잘 먹고 잘살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행정대집행으로 인해 강제로 산을 내려온 밀양 주민들은, 이제 곧 송전탑이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임에도 “우리는 지지 않았다”고 외쳤다. 이 말은 당시에는 상당히 의심스러웠으나, 행정대집행 이후 1년 동안 내가 본 밀양은 과연 무엇이 승리인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101번을 지켰던 주민들과 연대자들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마을에 바느질 방을 열고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서 여전히 산에서처럼 수다를 떨고 뜨개질을 하고 수를 놓으며 예쁜 수예품들을 만들어냈다. 마을 뒷산에 101번 송전탑이 쑥쑥 올라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주민들은 (주문량을 채우기 너무 바빠)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탈핵탈송전탑 원정대’를 꾸려서 전국 각지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역을 다니며 실상을 파악하고 투쟁 경험을 나누었다. 밀양 주민들은 탈핵의 아이콘이 되었다. 

밀양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진행 중인 싸움에 승패를 나눌 수는 없지만, 101번 사람들은, 밀양은, 투쟁으로 얻으려 한 것을 이미 투쟁 과정에서 이루었다. 국가가 할 일이 따로 있지 않고 그저 놀러 가는 아이들 지켜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듯이, 송전탑 반대 투쟁의 목적도 결국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투쟁의 한가운데서 이 사실을 깨닫기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루어낸 밀양 주민과 연대자들이 있었다. 나의 영화는, 거대하게 치솟은 69기의 철탑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밀양 싸움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알리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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