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투캅스
강우석, 1993
벌써 20년 전 영화가 되어버렸지만 <투캅스>(1993)는 아직도 재미있고 웃기며 흥미롭다. 그 상업적 성공 때문에 오히려 가려지고 있는데, <투캅스>는 한국의 장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진지하게(!) 재검토되어야 할 영화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한국의 코미디는 대부분 이 영화에 빚지고 있으니, 어쩌면 한국의 코미디는 <투캅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도 할 수 있다.
1960년대 서민극의 위대한 유산을 망각하면서 그 ‘품위’를 잃기 시작한 한국의 희극은 1970~80년대엔 몇몇 코미디언들에게 기대면서 저질 시비에 휘말리게 되었고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영화가 바로 <투캅스>였다. “웃다가 죽어도 좋다”라는 야심만만한 헤드 카피를 달고 나타난 이 영화는 한국 코미디 장르의 전통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관객은 더 이상 억지스러운 설정 속에서 냉소에 가까운 웃음을 짓지 않아도 되었고, ‘코미디의 현실 감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1990년대 초에 등장한 로맨틱 코미디가 여성 관객에게 호소력을 지녔다면, <투캅스>는 이른바 ‘전국구 코미디’였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달콤한 신부들>(1989)로 데뷔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1990)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1991) <미스터 맘마>(1992)로 이어지는 시기, 강우석 감독의 영화엔 언제나 사회적 시스템과 주인공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있었는데, 그것이 ‘화해’나 ‘해소’의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가끔씩은 다소 억지스러운 드라마가 드러나곤 했다.
시대의 요구를 장르 영화에 최대한 반영하며 그 안에 웃음과 감동을 싣겠다는 그의 의도는 가끔은 성공적이었지만 종종 어색했다. 농촌 총각과 도시 처녀의 사랑, 입시 지옥과 청소년의 현실, 대졸 실업자의 악전고투, 부패한 정치인과 언론의 진실 찾기, 결손 가정의 회복 등 강우석 감독의 테마는 언제나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었지만 그 안에 나름의 ‘의미’를 담으려 하면서 그 시도는 무리한 감동이나 과잉된 주제의식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에겐 세상에 대한 작은 믿음 같은 것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투캅스>에 오면, 강우석 감독은 세상을 조금은 삐딱하게 바라본다. 조 형사(안성기)가 시종일관 흥얼거리는, 리어카 상인에게 ‘삥’ 뜯은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신신애의 노래 가사처럼 “세상은 요지경”이며, 감독은 두 형사를 통해 그 요지경인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러기에 이 영화엔 어떤 감동도, 의미도 없다. 세상에 대한 믿음 같은 건 더욱 없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1993년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유지되던 군인들의 통치가 물러나고 들어선 이른바 ‘문민 정부’ 시대가 열린 것이다.
‘3당 합당’이라는 반칙으로 생겨난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독재라는 ‘공공의 적’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세상은 뭔가 달라 보였다. 독재와 함께 숭고한 이념이나 절대적 가치도 동시에 사라져 버린 것 같았고, 사회는 갑자기 온갖 비리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세상은 요지경’은 시대정신 같은 노래였다. ‘세계화’의 구호 아래서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사는 세상에선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치게 되었다. <투캅스>는 바로 그 세상에 대해 냉소한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악과 부정이 가득 찬 곳이며,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라는 무사안일주의가 자연스레 통용되고, 공권력은 썩을 대로 썩었다. 여기서 강우석 감독은 관점을 관객들이 “웃다가 죽어도 좋을” 장르 영화로 각색하면서, 끊임없이 현실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투캅스>는 결국은 어떤 주제의식보다는 장르적 쾌감을 위한 영화다. 강우석 감독은 새로운 코미디를 만들려고 했다. 감독은 한국의 희극 전통에 이상한 찌꺼기처럼 남아 있던 감상주의와, 배우의 개인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억지스러움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진 듯하며, 이른바 ‘상황의 코미디’라는 대안을 내놓는다. 두 명의 형사가 있다. 적당히 부패한 비리 경찰인 조 형사와, 경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강 형사(박중훈). 불법 천지라는 현실과 두 형사의 대립으로 ‘부팅’이 된 영화는, 상황과 캐릭터가 알아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듯 전진한다.
여기서 이 영화가 이후 코미디 영화에 끼친 결정적 영향은 그 ‘쿨’한 리듬이다. “홍콩영화 많이 봤구만.” “지원 요청 안 합니까? / 나 혼자 해먹기도 바빠.” “적어도 선배님 같은 경찰은 되지 말아야죠. / 그건 그래.” “나 교회 집사야 집사! / 집사도 짭짤한 모양이죠?” 이런 대사들의 액션-리액션이 만들어내는 호흡은 지금 봐도 경쾌하다. 게다가 취조실에서 조 형사가 자해하는 장면이나 호텔 커피숍에서 ‘마약 찾으러 오신 분’이라는 팻말이 돌아다니는 장면의 개그 스타일은 이 영화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투캅스>는 <투캅스 2>(1996)로 이어지면서 마초 액션이 되었고, 김상진 감독이 메가폰을 이어받은 <투캅스 3>(1998)는 여형사(권민중)의 육체를 탐하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자신이 일군 프랜차이즈가 그렇게 퇴락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걸까? 강우석 감독은 <공공의 적>(2002)에서 자신이 개발한 ‘경찰 코믹 액션’ 장르를 수정하고 재개발하며 동시에 더욱 더 강한 냉소주의의 냄새를 풍기며 ‘강철중’(설경구)이라는 슈퍼 히어로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