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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장사의 꿈

신승수, 1985

[한국영화걸작선]장사의 꿈 대표 이미지

‘몸’이라는 키워드를 빼놓고서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순 없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1982년 <애마부인>부터 시작된 ‘에로티시즘 영화’에 해당되는 얘기만은 아니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을 기점으로 충무로에 불기 시작한 ‘사회파 영화’에서도 ‘몸’은 중요한 화두가 된다. 사창가를 중심으로 ‘카수 영애’의 고달픈 삶을 그렸던 <어둠의 자식들>(1981)과 원래는 그 속편으로 기획되었던 <바보 선언>(1984), 박철수 감독의 <어미>(1985)와 <안개기둥>(1986), 이원세 감독의 <여왕벌>(1985), 김호선 감독의 <서울 무지개>(1989) 등의 영화에선 인신 매매, 페미니즘, 미국, 정치 매춘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몸을 통과해 스크린에 투영된다.
이 시기 이른바 ‘뉴 웨이브’의 작은 흐름을 만들었던 신인 감독들의 시선에서도 ‘몸’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이미례 감독의 <수렁에서 건진 내 딸>(1984), 장길수 감독의 <밤의 열기 속으로>(1985),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1988) 등이 테마를 전달하는 수단은 ‘육체’이며, 그 위엔 욕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신승수 감독의 데뷔작인 <장사의 꿈>(1985)도 이 흐름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육체가 어떤 식으로 마모되고 만신창이가 되는지를, 두 남녀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시골에서 올라온 일봉(임성민)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찾아온 새벽의 인력 시장. <장사의 꿈>은 몸이 사고 팔리는 그곳에서 시작하는 ‘거래되는 육체의 오딧세이’인 셈이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를 지닌 그는 벽돌 공장으로 가지만 곧 그곳을 그만두고, 씨름 선수에 도전하지만 대회 예선에서 떨어진다. 이때 우연히 만난 소매치기 멍군(김동수)은 일봉을 ‘장군’이라 부르며 그를 포르노 현장에 소개한다. 그곳에서 만난 상대 배우 애자(금보라)는 악랄한 제작자이자 기둥서방 같은 존재인 마대수(송경철)에게 철저하게 착취당하는 신세. 일봉은 애자를 보호하려다 마대수에게 폭력을 가해 전과자가 되고, 출소 후 애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장군 복장을 하고 가게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거나 막노동 판을 전전하는 일봉. 봉제 공간에서 일하는 애자. 그들은 어느 약장수(김인문)을 따라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지만 임신 중이던 애자는 자동차 사고로 사산하고, 그들은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한다. 유한 마담들의 성적 대상인 남창이 된 일봉은 애자를 잊지 못하고, 수소문 끝에 찾아간 나이트클럽에서 애자는 스트립 댄서가 되어 있다. 
<장사의 꿈>의 일봉과 애자는 1970년대 개발 독재와 1980년대 천민 자본주의가 도시의 하층민에게 가하는 육체적 수탈을 보여주는, <영자의 전성시대>(1975)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가정부-여공-창녀를 거쳤던 영자가 결국은 불구가 되었듯, 일봉과 애자도 육체적 마비 상태에 이른다. 일봉은 남창 생활 끝에 성 불구가 되고, 스트립 댄서가 된 애자는 마치 산 송장처럼 표현된다. 여기서 <장사의 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혹시 실체는 없는 ‘도시의 유령’은 아닌지 의심한다. 
애자는 일봉에게 독백처럼 말한다. “당신과 내가 서로 만지는 건, 몸이 아니라 조명 불빛이에요.” 일봉이 애자를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도 애자는 마치 귀신처럼 일봉 옆에 나타나 몸을 기댄다. 애자의 판타지 장면에서 그녀는 아무 사람도 없는 거리를 벌거벗고 달리거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 거리에 서 있다(이 장면엔 소리가 없다). 포르노 촬영장과 나이트클럽 스테이지의 불그스름하고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서 나체로 누워 있는 애자의 모습은 마치 귀신 혹은 시체처럼 보인다(이때 일봉은 말한다. “애자 씨, 몸이 차갑더군요.”)
애자의 육체가 불빛 사이를 유령처럼 빠져나가는 존재라면, 일봉의 육체는 쇼윈도의 마네킨처럼, 무엇인가를 전시하기 위한 욕망의 매개체다. 그는 이 영화에서 마치 ‘옷걸이’와도 같다. 씨름 대회에서 탈락한 후 덥수룩한 ‘수염을 밀어버린’ 그는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고’, 범죄자가 되어 ‘죄수복을 입으며’, 호객 행위를 위해 ‘장군 옷을 입고’, 남장이 되어 매끈한 ‘정장 차림’이 된다. 그는 영화 내내 자신의 옷을 입지 못한다. 그는 끊임없이 규정될 뿐이다.
황석영의 원작을 영화화한 신승수의 <장사의 꿈>은 에로티시즘이라는 당대의 트렌드를 따르는 듯하지만, 육체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 당대의 섹스 심벌이었던 임성민은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를 교묘히 뒤집으며,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에로’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당시 한국영화의, 아니 한국 사회의 실체를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엔, 1980년대를 통틀어 가장 애절한 섹스 신이 있다. 포르노를 찍던 일봉과 애자는 “컷!” 소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섹스를 한다. 도시에서 소외 당한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들이다. 당대 그 어떤 에로티시즘 영화도, 이 영화의 이 장면보다 더 비참하고 진정성 있는 섹스 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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