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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다음 정부에 제안하는 독립영화 진흥정책

[칼럼]다음 정부에 제안하는 독립영화 진흥정책 대표 이미지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해 11월 13일,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는 ‘다음 정부에 제안하는 독립영화 진흥정책’을 발표했다. 한독협은 “독립영화에게 기회를! 시장에는 공존을! 모두에게 영화를!”을 기치로 삼아, ‘지속 가능한 독립영화 기반 구축, 영화 시장 경제 민주화, 지역 영화 진흥 및 영화 문화 복지 기반 구축, 독립영화인 사회보장 확대, 표현의 자유 확대’ 등을 5대 핵심과제로 내걸고, 독립영화 법제, 영화진흥정책 집행, 독립영화인 사회보장, 창작, 투자, 상영, 배급/유통, 방송, 관객 개발, 해외, 교육, 연구, 아카이브 지원 등 13개 분야에 걸쳐 53개 정책을 상세히 제시했다.

이 정책안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구축과 “경제 민주화”라는 경제 공약 용어가 독립영화 진영에서도 뜨거운 화두임이 우선 눈에 띈다. 2007년 11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하고 뒤이어 여러 극장에서 독립영화를 걸면서, “개봉”은 더 이상 충무로 영화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으며, 방송?통신이 융합하면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도 활발해졌다. 전통적 의미의 영화 시장 뿐 아니라, 여러 장에서 독립영화 제작·배급 기회도 늘어난 것이다. 허나 독립영화가 적극적으로 진출하게 된 시점에, 시장은 거대 사업자가 유통 시장을 지배하는 형태로 재편되었다. “수직 계열화” 등 불공정 경쟁이 관행화된 시장에서, 영화산업과 영화문화의 “기반 또는 기초체력”으로 일컬어지는 독립영화와 이를 생산하는 독립영화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는 문제의식이 “경제 민주화”라는 고언을 독립영화 진흥 정책에도 등장시켰다. 

한독협 정책안은, 기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사업에서 흔히 목도되는 백화점식 분산지원 정책을 지양하며, 이번 정부만이 아니라 십 년을 내다보며 독립영화인이 주체가 되어 제작-유통-상영 등 전면적인 기반을 구축하는 장기 전략을 세우고 ‘독립영화-영화산업-영진위’를 아우르는 ‘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할 것을 요구한다. 또, 기존 시장 구조에 기댄 독립영화 제작·배급 구조의 확대 말고도 여전히 시장 영역으로 환원할 수 없는, 자발성과 자율성에 기댄 문화공동체 설립과 운영 지원으로 영화 문화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광역시를 제외한 기초자치단체 60%에 여전히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없어 균등한 문화 향유의 기회가 박탈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 등을 과제로 제시한다. 

예술인복지법 입안 등이 현실화되고 있으나 ‘자영업자’가 대부분이어서 여전히 사회 안전망 밖에 머물러 있는 대다수의 독립영화인들을 위한 복지 정책과, 현정부 아래 5년을 보내며 여러 번 침해된 독립영화 표현의 자유 확대도, 지면상 길게 쓸 순 없지만(이미 쓴 적도 있다), 주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11월 29일부터 열린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향후 5년, 독립영화 정책을 점검하다”라는 이름으로 이 정책안을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세미나도 열렸다. 그동안 정책 생산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진흥정책에 대한 자문과 그로 말미암은 수혜(물론 때로는 반대와 저항도 수반했으나)에 자족했던 독립영화 진영이, 정책을 먼저 수립하여 공표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더욱이 ‘다음 정부에 제안하는 독립영화 진흥정책’은 특정 후보 캠프를 위한 정책 하청이 아니라 독립영화 생산 주체들 자신이 앞으로의 5년을 바라보며 제언한 정책이므로, 대선이 끝난 지금은 새 정부를 준비하는 정책 입안자와 집행자들이 이를 다시 새기고 실천하도록 추동할 적기일 터다. 글을 맺으며, 지지 후보가 낙선했다 하여 헛헛해 하고 있는 많은 벗들에게 이즈음 읽은 책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인간의 위대함과 함께 인간의 한계를 이해하는 기초 위에서 정치의 현실을 다루어야 하고,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을 구현한 이상과 비전의 정치가 균형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중략)정치의 이율배반성은 끝도 없이 많다. 어쩌면 그것은 선하게만 살 수 없는 인간의 운명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중략)인간은 천사가 아니고 천사에게 정치를 맡길 수도 없다. 시민을 모두 아리스토텔레스로 만들거나 철학 세미나를 하듯 정치를 운영할 수도 없다.

정치가 혹은 정치적 실천에 나선 사람들이라면 이런 조건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차이와 갈등 속에서도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을 찾을 수 있고, 허황된 기대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냉소하고 방치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누가 더 진보적이고 누가 더 민중적이고 누가 더 고생했고 누가 더 착하고 누가 더 진정한지에 대한 것으로 시간과 열정을 다 소진하지 않고, 누가 더 정치적으로 권력을 선용할 만큼 담대하고 결국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중략)정치는 (중략) 감당할 수 없는 윤리적 딜레마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횔덜린의 시에서 말하고 있듯이 “구원은 위험이 있는 곳에 있다.”” -박상훈, 「진보와 정치적 이성」, 『지금 여기의 진보』(이음, 2012)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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