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극장가 애니메이션 봇물, 그 원인은
최근 극장가에 애니메이션이 쏟아지고 있다. 올 상반기(1월~6월)에만 44편의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개봉한 애니메이션이 51편이었다는 점과 비교해보면 그 증가세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겨울방학 특수를 노린 1, 2월(19편)을 제외하고도 매월 4편 이상이 스크린에 선보였다. 할리우드나 일본 외에도 이탈리아, 독일, 태국, 인도 등 작품의 국적 역시 다양해졌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국 영화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어려워진 외화 시장에 이들을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그나마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인들이 해외 영화 마켓에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을 구매하며 가격을 올려놓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다보니 한 주에 3~4편의 애니메이션이 개봉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 9년 전에 제작된 작품이 스크린에 걸리기도 한다.
영화 홍보사들이 부쩍 치열해진 관객 유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꺼내 든 카드는 연예인 더빙이다. 관객들뿐 아니라 언론의 주목까지 받을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공략층인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그 콘서트’의 인기 개그맨들 참여는 대세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하루나 이틀 정도의 녹음으로 캐릭터에 부합하는 연기를 기대하기 어려울뿐더러 유행어 남발로 인해 실제 캐릭터의 특징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단지 같은 개그맨이 더빙했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두 작품이 본편과 속편으로 소개되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가족 대상의 애니메이션은 주로 부모들이 작품의 선택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재미보다는 교육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북유럽 신화를 소재로 하는 한 작품의 경우 캐릭터 설명에 대한 자막과 유명 연예인 더빙의 시너지 효과에 힘입어 7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아일랜드의 제작사에서조차 깜짝 놀랄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개봉 소식은 들리지만 정작 극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품들도 있다. 처음부터 극장 개봉보다는 IPTV나 온라인 부가시장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다. 극장과 동시 개봉 서비스를 통해 좀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상황이 다소 다르다. <명탐정 코난>, <도라에몽>처럼 TV 시리즈의 인기를 기반으로 매해 극장가를 찾는 아동용 애니메이션도 있지만,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의 개봉이 늘어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은 불법적인 다운로드를 통해 작품을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과 큰 시차 없이 작품을 스크린에서 접할 수 있게 됐고, 관계자들의 내한, 특별 영상 공개 등 다양한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마니아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극장판: 타이거 앤 버니>의 특별 시사회의 경우 참여 신청 홈페이지의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으며, <에반게리온: Q>의 개봉 전 특별행사인 ‘EVA Blue Day’가 열린 코엑스에는 약 1,000여 명의 팬들이 운집하기도 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수가 증가하고 다양해진 사실은 반갑지만 그 실상은 그리 반갑지 않다. 가족 타깃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입되는 작품들이 늘어나다 보니 영화사의 홍보 전략은 대부분 스타 마케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좋은 작품일지라도 흥미 요소나 본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기 일쑤다. 그나마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황이 나아 보이지만 마니아 위주다 보니 개봉 규모나 파급력이 크지 않다. 극장용 장편에 있어 흥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작품 외의 요소에 치중한 홍보 마케팅은 작품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거나 자칫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나 마니아가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지 않을까. ‘풍요 속의 빈곤’, 현재 극장가의 애니메이션이 처한 상황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