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새로운 상상력은 태어날 것인가
현재 북미 애니메이션 업계는 지각변동 중이다. 잘 나가던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3강의 위상이 흔들리는 가운데 중소 스튜디오들의 뚜렷한 성장세가 눈에 띈다. 소니 픽쳐스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리면>와 <몬스터호텔>을 흥행시키며 입지를 다졌고, 명실상부한 업계 3인자 블루스카이스튜디오는 신작 <에픽>을 선보이며 나름 순조로운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최고의 한해를 맞이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도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창립작 <슈퍼 배드>로 전미 박스오피스 9위라는 기염을 토했던 이 신인답지 않은 제작사는 올해 <슈퍼 배드 2>로 픽사의 야심작 <몬스터 대학교>마저 누르며 명실상부한 승자로 등극했다.
반면 기존 3강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가장 위기에 봉착한 건 드림웍스인데 <가디언즈>의 흥행 참패 후 오랫동안 함께 했던 파라마운트와 결별했다. 다행히 폭스와 손을 잡으며 재기를 노렸던 <크루즈 패밀리>가 전 세계 5억불을 넘어서며 평균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지만, 이어진 <터보>의 참패로(전 세계 1억 3천만불) 여전히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하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는 <드래곤 길들이기 2>에 남은 기대를 걸어 본들 이미 애니메이터를 대량으로 해고해야 할 만큼 자존심을 구긴 지 오래다. 디즈니와 픽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하지만 <카2>, <메리다와 마법의 숲> 등 왕년의 왕자의 명성에 다소 못 미치는 작품들로 아쉬움을 더한다.
2006년 디즈니와 픽사의 합병 이후 승승장구 할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서로의 장점을 갈아먹는 쪽으로 결합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일은 디즈니와 픽사가 합쳐진 시점부터 업계 전반의 평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단 점이다.
<토이 스토리>로 일대 혁신을 일으키며 단번에 부상했던 픽사는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혁신에 가치를 두고 있었다. 디즈니의 셸 애니메이션에 대항하여 3D 애니메이션으로 시장 흐름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 보수적인 동화를 고집하던 디즈니 클래식을 넘어서는 젊고 유쾌한 감각으로 포스트 디즈니 시대, 즉 3강 시대를 열었다. 디즈니를 뛰어넘으려는 픽사의 도전정신, 디즈니에 저항하며 반대의 길을 걸으려는 드림웍스의 반골정신, 그리고 시대에 발 맞춰 무거운 엉덩이를 들며 변화를 꾀한 디즈니의 아성은 2000년 초중반 북미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패러다임이었다. 3사의 작품들은 각각 나름의 개성이 뚜렷했고 관객들은 작품만큼 이들 제작사의 브랜드를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 3사의 뚜렷한 개성이 점점 희미해지며 이 같은 3자 구도 역시 함께 무너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신생 제작사들에겐 좋은 기회였다. 신생이라고는 하지만 디즈니가 애니메이터들을 전부 독점 관리하고 있을 때와는 업계 환경이 달랐다. 애니메이터의 개별적인 역량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는 셸 애니메이션에 비해 3D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환경은 이미 어느 정도 평준화 되어있었다. 3D라는 기술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실상 디즈니 바깥에서 생겨난 흐름이기 때문이었다. 3D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애니메이터들 간의 이동도 예전에 비해 자유로워졌고 축적된 기술력이 고스란히 다른 제작사로 이동하기도 한다. 투자자본 역시 이에 맞춰 유동적으로 지원 중인데 현재는 크게 디즈니와 폭스가 경쟁하고 있는 구도다. 덕분에 이젠 제작사가 달라도 관객들이 작품의 질적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엇비슷한 수준까지 평준화되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애니메이션이 전체 시장을 두고 작품 별로 여러 프로젝트 그룹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지금 북미 애니메이션 업계는 현재 역사의 분기에 서 있다. 디즈니 절대 왕정이 끝나고 들어선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의 삼국 시대가 저물고 여러 제작사들이 겨루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제작사간 구분이 큰 의미 없고 개별 작품의 완성도로 평가받는, 절대 강자 없는 난세다. 혼란스런 시대는 영웅을 부르는 법. 픽사가 3D 애니메이션 시대를 연 것처럼 새로운 영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매 작품 긴장을 늦을 수 없는 스튜디오들은 괴롭겠지만 관객 입장에선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