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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별이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칼럼]별이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대표 이미지

지난 8월 2일은 2013년, 올해로 열다섯 번째를 맞이한 정동진독립영화제의 개막일이었다. 저녁 7시, 어김없이 500여 개의 의자는 관객으로 가득 찼고 그 주변으로는 돗자리를 가지고 온 관객의 차지였다. 피어오르는 쑥불의 향 내음과 개막특별공연을 맡은 몽구스의 뜨거운 리듬이 일천여 관객의 눈과 귀를 가득채운 운동장에 5년째 개막사회를 맡고 있는 배우 김꽃비와 감독 최시형이 이끄는 개막식이 시작된다. 권정삼 강릉씨네마떼끄 대표의 한결같이 쑥스러운 개막선언과 함께 7년째 함께하고 있는 정용준 감독의 영화제 공식 트레일러의 상영이 이어진다. 자! 열다섯 번째 별이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가 시작된 것이다.

때는 1999년,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처음 열린 해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관객이 많지 않았고, 준비자금도 넉넉지 않았고, 영화제를 준비하는 상근활동가도 없었다. 물론, 야외영화제 최대의 적인 비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자주 왔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제가 15년이 지난 지금은 8월 첫주 주말 3일 밤에만 열리는 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누적 관객 6천 명에 달하는 영화제가 되었다. 물론, 영화제를 준비하는 우리도,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도 그 누구도 우리 영화제를 규모로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제의 규모가 커질 듯한 느낌이 감지되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좋긴 하지만 규모가 커져서 정동진독립영화제만의 느낌이 사라질까 걱정돼요.” 라며 바로 우리를 긴장시켜주는 관객들이 생겨날 정도로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 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과연! 지난 15년간의 정동진독립영화제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제를 앞둔 7월이면 매년 이어지는 영화기자님들의 첫 번째 질문. “올해 달라진 정동진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특징은 달라지지 않으려는 것이 특징이다. 예산이야 뭐 우리가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달라지지 않고 있지만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찾아주는 관객이 느끼는 정동진독립영화제만의 분위기는 절대 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그 분위기라는 건 뭘까.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찾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시청후각적 느낌들. 이를테면 한여름밤 아름답기 그지없는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스크린 뒤로 지나가는 밤 기차의 기적 소리 그리고 좋은 이들과 함께 독립영화를 보는 느낌들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정동진독립영화제만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우리도 좋아하고,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도 좋아하는 이 분위기는 누가 만든 걸까? 모르겠다. 다만 몇 가지 에피소드는 얘기해볼 수 있겠다.

Episode. IV 페인트 묻은 바지의 진실
2008년. 10주년을 맞은 정동진독립영화제 첫날 뒷풀이 자리에서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 마이크를 잡았다. 입고 있는 카키색 바지를 가리키며 자리한 모두에게 물었다. '이 바지가 무슨 바지인지 아느냐' 모두가 흰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바지를 쳐다봤고, 김동원 감독은 그 바지가 1999년 1회 정동진독립영화제때 입고 왔던 바지라고 했다. 영화제에 왔다가 조영각 당시 한독협 사무국장, 홍수영 사무차장 그리고 한독협 회원, 강릉씨네마떼끄 회원들과 함께 밤에는 시멘트 바닥에서 스티로폼 깔고 자고, 낮에는 여름 햇빛 아래 스크린을 만들고, 흰색 페인트를 칠하다가 하얀 얼룩이 묻은 바지였다. 뭣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었던, 서로의 몸과 몸으로만 시작한 영화제가 엊그제 같았을 텐데 어느새 10년이라니 일부러 입고 오셨을 게다. 

Episode. V 어제도 왔던 청년 오늘도 또 왔네 그려
2002년. 월드컵의 뜨거웠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열렸던 제4회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최강의 적, 비와의 전쟁이었다. 영화제 첫날부터 폭우로 인해 에어스크린이 찢어지는 참사가 발생했고, 그치지 않는 비 덕분에 첫날 상영은 완전히 취소되었다. 모두가 시무룩했던 그날 밤, 자기 덩치만 한 큰 배낭을 맨 청년이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왔고, 이 청년은 “영화제 안 해요?”와 “내일 다시 올게요”라는 짧은 대화만을 남기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여전히 계속되는 폭우로 야외상영은 어려웠고, 우리는 실내상영을 준비했다. 그때였다. 다시 나타난 어제의 그 청년. “제가 뭐 도와드릴 거라도...” 그 한마디가 씨가 되어 이 청년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우리와 함께 영화제를 준비했고, 결국엔 마지막 날 갑자기 비가 그친 하늘 아래 스크린을 쌓아올리고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를 필름으로 쏘아낸 그 순간을 함께했다. 이 청년은 그 뒤로 무려 10년을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저 남쪽 마산에서 강릉까지 올라와 일주일간 영화제를 만들곤 다시 남쪽으로 사라진다. 그 청년의 이름은 박중언이다.
 
별이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Episode. VI 크라우드 펀딩 후원금 끝자리 470원의 비밀.
지난 2011년에 이어 올해, 다시 한 번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했다. 대개 펀딩 후원을 하면 대부분 만원 혹은 천원 단위로 후원을 한다. 그러나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 펀딩 후원금의 최종 끝자리는 470원.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때는 2011년 8월 7일. 제13회 영화제의 마지막 날. 정동진독립영화제만의 전 세계 유일무이한 현금박치기 관객상, 일명 땡그랑동전상 시상식장이었다. 그날 수상의 영광은 <거북이들>로 전 세계 덕후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구교환 감독! 그의 땡그랑동전상 상금은 동전 249개, 금액은 30,470원이었다. (매일 한 작품씩 시상하는 땡그랑동전상은 동전 개수 일천 개, 금액 십만 원을 상회하지만 마지막 날만큼은 상금금액이 뚝 떨어지는 동전상 상금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이 정동진에는 존재한다.) 그렇다. 끝자리 470원의 범인은 바로 구교환 감독이었다. 2011년에 받았던 땡그랑동전상 상금을 2년간 고이 간직했다가 올해 크라우드 펀딩 후원금으로 쏟아 부었던 것이다.

그렇다. 지난 십오 년간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딱 꼬집어 대답할 순 없지만 이런 에피소드들이 지난 십오 년간(우리는 늘 “이제 겨우 십오 년밖에 안된걸요”라고 얘기하지만 말이다.)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관객과 독립영화인 그리고 강릉씨네마떼끄 회원들이 서로 주고받은 말과 행동들 그리고 마음들이 이어져 분에 넘치게 사랑받는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만들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정동진독립영화제만의 분위기를 쌓아온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누군가 “정동진독립영화제의 목표는 뭐예요?”라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변함없이 이 자리에서 지금처럼 관객과 함께 오래오래 즐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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