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레퀴엠 포 로맨스
헤어짐을 고하는 연인의 말이 전해오는 충격과 혼란, 현 상황을 되돌리려는 노력, 그리고 밀려오는 분노, 모든 것들이 지나간 후의 애잔함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의 이별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큼 통속적인 영화 소재임이 분명하지만 <레퀴엠 포 로맨스>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재가 지닌 여전한 매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인다.
어둠 속에 들려오는 통화대기음, 전화번호를 누르는 소리, 통화 연결음으로 이어지는 사운드와 밤하늘을 날아가는 학의 비주얼이 주는 느낌은 사뭇 이질적이다. 이 통화의 주인공 윤(Yun)과 차이(Tsai)는 쿵후 영화의 주인공 같은 차림으로 동양적 내음이 물씬 풍기는 건물 지붕의 맞은편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다. 이리저리 여러 가지 색으로 물결치는 밤하늘과 이들의 격렬한 무술 대결은 전화 통화 속 이들의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작품 내내 연인들의 표정은 한 번도 클로즈업되지 않는다. 전화선을 타고 전해지는 이들 목소리의 떨림과 무술 대결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차이의 헤어지자는 말은 그녀가 꺼내 든 칼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윤을 파고든다. 그녀는 만날 수 없는 이유들을 나열하며 무차별하게 공격을 이어간다. 윤은 당황하며 피하기에 바쁘다. 힘들게 반격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뿐이다. 차이에게 겨우 다가가지만 그녀는 오히려 또 다른 무기를 꺼내 들며 더 큰 아픔을 안겨주고, 윤은 분노의 불길에 휩싸여 결국 칼을 뽑아들게 된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공격을 주고받으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러나 윤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분노는 사그라지고 붉게 물든 하늘도 비가 내리며 푸르게 식어간다. 이들은 말을 타고 추억의 애잔함과 슬픔이 공존하는 숲 속으로 향한다.
<레퀴엠 포 로맨스>는 동양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아트워크나 중국풍의 음악을 비롯해 예술가에 대한 편견으로 딸의 교제를 반대하는 보수적인 부모의 모습, 그들의 뜻에 따라 안정적인 직업의 남자를 만나는 차이의 모습 등은 낯설지 않다. 특정 문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자칫 관객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나단 잉 감독은 남녀의 이별과 쿵후 대결의 접점을 찾아내며 자신의 선택에 당위성과 흥미로움을 부여하며 이를 극복한다. 또한 현재를 상징하는 전화와 과거를 나타내는 쿵후라는 두 소재가 지닌 대조적인 느낌까지 더해지면서 <레퀴엠 포 로맨스>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