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멀리 가지는 못하리라
몇 년 전,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 기념 책자 작업에 참여하면서 인터뷰했었던 인디스토리 김화범 팀장은 인디스페이스 개관 직후 한독협을 그만두고 인디스토리로 옮기게 된 배경에 대해 ‘자신에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데 멀리도 못 가고 인디스토리’였다면서 웃음을 주고받았었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시간이 벌써 10년 넘게 흘렀다. ‘독립영화’라는 단어와 내가 처음 연결된 것은 2003년의 일이었다. 아니, 2002년이던가? 어쩌다 보니 독립영화의 관객이 되고, 독립영화제에서 일하게 되고, 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이 되고, 회원이 되고, 조금 더 큰 영화제에서 일하다가 독립영화전용관 프로그래머가 되고, 몇몇 독립영화제의 예심을 보고 프로그램노트를 쓰고, 영화제 기간에는 GV를 진행하고... 이러고 살게 되었다.
중간에 한번, 독립영화와 연관된 모든 게(심지어 사람들도) 싫어져서 전혀 다른 일을 하겠다고, 이른바 업종 전환하겠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인디플러스를 결국 그만둔 작년 5월부터였다. 정말로 전혀 다른 일을 찾고 있었다. 누군가 무슨 일을 같이하자고 할 때에도, 당장 생활은 유지해야 하니 잠깐씩 아르바이트 삼아 할 수 있는 일들이야 하긴 했지만, 길게 봐야 하는 일 중에서는 영화에 관한 일은 안 하겠다고 했고, 완전히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일을 제안받으면 솔깃했다. 처음엔 그야말로 못 갈 곳이 없을 것 같았고, 절대로 영화, 특히 독립영화 쪽은 쳐다도 보지 않으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렇게 다짐한 이유는, 정말이지 지긋지긋해서였다. 글이 너무 심각해지거나 독해질 수 있으니 그 이유를 구구절절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내가 신뢰하는, 나를 지탱하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처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정도만 말해두는 걸로.
몇 달이 흘렀다. 많은 곳에 지원서를 냈고, 그 중 몇 군데는 면접을 보기도 했다. 주로 영화를 제외한 문화 관련 기관/단체들이었고, 무려 제약회사(!)도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에게서 10년에 달하는 영화 관련 경력을 먼저 보았고, 영화제에서 일했던 경험에 호기심을 가졌으며, 무엇보다, 독립영화가 뭐냐고 물었다. 나도, 안 하겠다고 발버둥을 치면서도 실상 떠오르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모두 ‘독립영화로 이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운 사람들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결국은 ‘나를 둘러싼 것은 독립영화가 뿜어내는 공기’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말았다.
오랜 은둔 혹은 칩거를 끝내고 3월 초부터 새로운 곳에 출근하고 있다.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어느 국제기구인데, 올봄에 영화제를 시작해 보려고 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영화제 전문가(Expert of Film Festival)' 행세를 하고 있다. 내가 원해서 그러고 있는 건 아니고, 이곳에 영화제에서 일해보기는커녕 관객으로 가본 사람조차 없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되어 버렸다. 5월 하순에 시작될 이 영화제는 동남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을 틀 것이다. 자국에서 꽤 큰 수익을 낸 상업영화들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독립영화들이다. 게스트도 여러 명 초청한다. 자국 내에서는 물론 인근 국가에까지 잘 알려진 섹시 콘셉트의 인기 여배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초청될 것이다. 영화제를 끝내고 나면 사업을 본격적으로 구상해 볼 생각이다. 영화를, 특히 독립영화를 매개로 하는 수익사업이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업종 전환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영영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독립영화를 두고 멀리 가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