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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겨울왕국>이 휩쓸고 지나간 풍경, 싹트는 가능성들

<겨울왕국(크리스 벅, 제니퍼 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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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정적이 깃드는 법이다. <겨울왕국>이 애니메이션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괴력을 선보인 이후 극장가 애니메이션들은 좀처럼 기세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개봉 편수만 놓고 보면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흥행 성적은 뚜렷이 하향평준화 됐다. 단적으로 <겨울왕국>을 제외하곤 올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 100만을 넘긴 작품이 한 편도 없다. 블루스카이의 기대작 <리오2>도 70만에 그쳤고, 드림웍스의 <천재 강아지 미스터 피바디>는 40만에도 미치지 못했다. 재밌는 건 그럼에도 평균 관객 수를 계산해 보면 그리 차이가 나진 않을 거란 사실이다. <겨울왕국>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이 다른 작품을 찾는 발걸음이 그만큼 줄었을 뿐이다. 단순하게는 평균의 함정을 증명하는 사례가 되겠지만 한편으론 이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 관객 수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싶어 걱정도 된다. 얼핏 <겨울왕국>을 한번 본 관객이라면 한동안 더 이상 애니메이션을 찾지 않는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사실 <겨울왕국>을 여타 애니메이션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한다는 건 무리가 있다. <겨울왕국>의 경쟁자는 여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블록버스터 실사영화들이다. <겨울왕국>만이 특별한 건 아니다. 대형 스튜디오의 작품은 대개 비슷하다. 가령 <겨울왕국>을 선택할 때 국내창작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동일 선상에서 비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를 선택하지 않을 때는 ‘이미 <겨울왕국>을 봤다’는 사실이 중요한 요건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아직까지 애니메이션은 전부를 뭉뚱그린 하나의 장르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 담겨진 다양한 개성과 전혀 다른 작품의 결은 무시당하기 일쑤고 접근방식의 다양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일례로 아동을 대상으로 하지 않은 작품도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로 교차 상영 시 오전시간에 집중적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인식 하에서 관객의 관심을 싹쓸이 하는 <겨울왕국> 같은 대작은 득보다 실이 많다. 애니메이션 전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보다 다른 애니메이션을 향한 잠재적인 관객까지 모두 빨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현재 극장가 애니메이션은 수입, 제작, 소비 모든 측면에서 일종의 진공상태에 빠졌다. 큰 작품, 작은 작품, 해외, 국내 창작 가릴 것 없이 다들 어렵다.

<겨울왕국>이라는 태풍은 좋든 싫은 애니메이션업계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이다. 여타 극장 애니메이션 부진의 원인을 <겨울왕국> 한 편에 지우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과 그림자를 부인할 순 없다. 수입 애니메이션을 살펴보자면 한 동안 무차별적인 수입되었던 중저예산 애니메이션들이 개봉 시기를 조절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TV 시리즈의 팬들을 중심으로 개봉하던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경우 극장 개봉보다는 IPTV 쪽에 더 힘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전문 성우를 기용한 <겨울왕국> 흥행은 그간 유행처럼 번지던 연예인 더빙에도 제동을 걸었기도 했다. <겨울왕국>의 인기와 함께 한동안 외면 받아왔던 전문성우의 필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시점에서 새삼 주목하고 싶은 건 국내창작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이다. <겨울왕국>의 흥행돌풍에 비하면 미미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 몰라도 국내창작애니메이션은 크고 작은 변화와 꾸준한 시도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한 규모 있는 작품도 준비 중이고 예술성 강한 프로젝트도 있으며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 독립장편 기획 작품들도 적지 않다. 물론 이는 <겨울왕국>과는 무관하게 지속되어온 움직임이다. 하지만 태풍이 불러온 정적이 이들의 절박한 사정과 필요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이 프로젝트들의 지속성과 이를 위한 제도적인 지원이다. 적어도 <겨울왕국>처럼 되어야 한다는 철없는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정도가 아니면 실패라는, 왜 우리는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없냐는 한심한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 모든 작품이 <겨울왕국>이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어쩌면 한 차례 태풍이 가져다 준 지금의 정적이야말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업계의 현실과 산적한 문제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늘이 맑게 개이면 새싹이 돋아나기 마련이다. 지금은 당장의 열매를 바랄 때가 아니라 이 싹들이 더 이상 바람에 넘어지지 않게 보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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