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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파업전야>, 그리고 제작자의 역할에 대한 소소한 생각

<파업전야(이은, 이재구, 장윤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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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들과 같은 94학번이다. 지금도 대학입학을 위한 중요한 관문이 되는 ‘수학능력시험’의 제1세대이며, 유일하게 이 시험을 두 번이나 치른 학번이기도 하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다른 새내기들과 비슷하게 고등학교 시절의 빡빡한 분위기와 정반대인 대학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동아리와 여러 모임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리고 길게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사회운동 연합’이란 곳에 들어가 이른바 ‘운동권’ 비스름한 흉내를 내곤 했다. 당시는 ‘쌀 개방과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한 반대 시위가 많았고, 나 역시 이런 시위에 동참하여 미국제 ‘게스’ 청바지를 입은 채 ‘양키 고 홈!’을 외쳤다. 

이랬던 시절,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영화가 <파업전야>(1990)인데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다. 어쩌면 기회가 있었지만,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파업전야>를 지난 6월 2일 인디포럼에서 16mm로 볼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이젠 영화제를 가도 쉽게 볼 수 없는 필름 상영이었다. 상영관 내에 임시로 설치된 16mm 영사기도 반가웠고, 영화를 보는 내내 들렸던 필름 돌아가는 소리와 화면에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스크래치의 흔적도 정겨웠다. 민중가수 안치환이 부른 ‘철의 노동자’가 극 중에서 흘러나올 때는 함께 따라 부르고 싶어 목구멍까지 노래 가사들이 간질거렸다. 영화가 제작된 지 24년이 지났지만, 주인공 한수가 겪었던 그 번뇌와 갈등이 나에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형으로 다가왔다. 

<파업전야> 상영 후에 원승환 이사(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의 사회로 장동홍 감독과 제작자인 이은 대표(명필름)와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파업전야>의 제작과 상영에 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일화를 들을 수 있었던 가운데 이은 대표의 제작비 조달과 환수, 그리고 재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영화창작집단 ‘장산곶매’의 첫 작품 <오! 꿈의 나라>에서 공동 연출을 맡았던 이은 대표는 <파업전야>의 제작자 역할을 맡았다. 연출보다도 제작비 조달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천만 원가량의 제작비가 필요했기에 취직한 선배 등 지인에게 알음알음 제작비를 빌렸고, 꼭 갚아야 한다는 책임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에 제작할 작품을 위한 초기 자금도 마련해야 했다. <파업전야>는 정부에서 불법 상영으로 규정했기에 극장 상영이 어려워서 지금의 공동체 상영 방식으로 게릴라 상영을 했다. 관람료는 무료였는데, 그 이유에 대해 ‘인디영화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럼 <파업전야>의 총 수익금은 얼마였을까? 이은 대표는 1억 남짓이었다고 밝힌다. 상영 시에 관람료 대신 팸플릿을 1천 원씩에 팔았는데, 그 판매 수익금이 1억 원인 것이다. 이 수익금으로 제작비도 충당하고, 빌린 돈도 갚았으며, 다음 작품인 <닫힌 교문을 열며>도 제작할 수 있었다. 이은 대표는 <파업전야>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제작자를 계속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소소한 독립영화 제작 워크숍을 통해 짧은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본 게 전부인 내가 독립영화 제작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건 자격 미달이지만, 솔직한 소감을 말하자면 이날 이은 대표를 통해서 독립영화 제작자의 모범답안을 본 느낌이었다. <파업전야>의 이면에서 오늘날의 공동체 상영과 크라우드 펀딩을 발견할 수 있었고, 독립영화도 적극적인 상영을 모색하고 그에 따른 이익을 거두어야 한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교훈을 가지고 감히 한 마디를 덧붙여 본다. 오래전부터 알던 한 독립영화 감독의 페이스북에는 지난 1년여 동안 자신이 연출한 영화의 제작과 영화제 상영, 그리고 개봉을 준비하는 과정이 가끔 올라왔고, 나는 그것을 통해 감독 혼자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배급사도 정해지고, 배급지원에도 선정되었으니 이제 관객과 만날 일만 남은 감독은 ‘관객 수(=수익)’에 대한 고민이 최근에 더 많은가 보다.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배급사만 믿지 말고 더 발로 뛰었으면 좋겠다. 힘들 게 말고, 자신의 영화이니만큼 기쁜 마음으로 말이다. 우선, 지인부터 유료관객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자신이 없다면, 솔직히 일반관객은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지인에게조차 내 영화를 알릴 수 있는 자신감과 배짱이 없으면 안 된다. 주변의 많은 감독님이 이런 일에 주저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독립영화 개봉과 여러 가지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많은데, 어느덧 자기 작품에 대해서도 ‘3인칭’이 되어 ‘남 탓’만 하고 있다. 

좋은 제작자를 만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자 없이 감독 혼자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게 아직은 독립영화인의 현실이다. 이왕 고생하는 거 좀 더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윤성호 감독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라는 말을 떠올리며 글을 마무리한다. (P.S 감독님, 개봉하면 꼭 극장에서 유료로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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