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독립영화 그리고 영상제작교육

[칼럼]독립영화 그리고 영상제작교육 대표 이미지
 
어떤 ‘선거공학’을 갖다 대더라도 득표력이 약한 진보정당에 관해서는 스케일 적용 효과(scalability)가 미약하다. 노동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의 단일화는 새정치연합과 정의당 단일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효과를 얻는 게 아니라 그냥 효과가 없다.
- <슬로우 뉴스 기사 ‘7.30 재보선으로 재확인한 다섯 가지 한국 정치의 현실’중에서>


얼마 전 끝난 7.30 재보궐 선거기사. ‘진보정당의 단일화는 작은 효과가 아닌 그냥 효과가 없다.’라는 문장을 보며 왠지 현재의 독립영화와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 영화가 SPA 매장에서 쉽게 사고 입을 수 있는 저가 의류처럼 변해버린 현실에서 ‘독립영화는 무엇인가?’란 말은 그 질문의 대상자를 찾기 힘들어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어느새 영화는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기보다는 소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창작자 내부의 고민과 이야기가 관객에게 공감을 얻기보다는, 대중의 취향이 정확히 데이터화되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영화는 창작의 영역이기보다 대중들을 위한 서비스영역처럼 보인다. 

이처럼 다수가 소비하는 영화만이 이슈가 되고, 그 소비의 이슈가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이 시점에서 ‘독립영화는 무엇인가’란 질문은 정말 무의미한 것일까? 질문의 의미를 좀 더 확장시킨다면, 독립영화의 의미를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 답은 영상제작 교육에 있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었던 영상제작은 현저히 쉬워지고 단순화되어가고 있다. 사람의 눈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욱 밝고 선명하게 대상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가 나왔고, 항공촬영도 저가의 드론으로 피사체를 정확히 화면에 담을 수 있으며, 노트북으로 카페에서 영화편집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소수의 사람만이 영화제작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영화를 만들고 즐길 수 있는 문화 민주주의의, 영화 평등주의 시대가 점차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영화의 본질적 의미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하여 창작자 내면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단편이나 장편으로 규정되고 극장이란 공간에서 상영되는 과거의 형태에 목매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의 내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제작과정에서 기쁨을 찾고 영상이라는 수단으로 자아를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의미의 독립영화로 충분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독립영화를 기대한다. 초등학생이 하루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일기를 쓰고(제작하고), 중학생이 여행의 기록을 뮤직비디오로 완성하여 친구들과 키득대며 볼 수 있는 세상.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 After Life>(1998)처럼 자신의 일생을 짤막한 단편영화로 회고 하며 유언장으로 남기고, 영상 러브레터로 첫사랑의 풋풋한 마음을 그 혹은 그녀에게 전달하고, 엄마가 사랑스러운 4살짜리 딸을 위해 영상 그림책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보는 세상! 그 재미와 의미가 인터넷을 통해서건, 스마트폰을 통해서든 누군가와 소통되고 공감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독립영화가 아닐까? 영화의 영역은 이미 무수히 많아진 스크린 덕분에 영상언어의 이름으로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영화 평등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독립영화의 의미를 확장시켜야 한다. 그것은 보는 영화, 감상의 대상인 영화의 영역에서 자신이 이야기를 직접 영상으로 표현하는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난 꿈꾼다. 가까운 미래, 지방 소도시 좁은 골목 한켠 소박한 간판을 달고 있는 영화학원을. 무료한 여름날 오후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상상을 공유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진지한 감독과 멋쟁이 배우가 되어 더위를 잊은 채 자신들의 꿈을 영상에 담고 있는 모습을.

(사진설명: 한국영상자료원 어린이 영화아카데미 현장)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