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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쯤되면 깡이다 -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다녀와서

[칼럼]이쯤되면 깡이다 -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다녀와서 대표 이미지

지난 8월 21일부터 25일까지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하나인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번에 열린 제15회 히로시마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격년으로 열리는 영화제의 30주년 기념이기도 하였다. 30년을 계속 이어온 히로시마애니메이션페스티발은 어떠한 모습일까?.

개인적으로는 2008년, 2012년에 이어 세 번째 영화제 참가다. 이번 영화제에는 14년 전 <아빠하고 나하고> 상영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했던 이경화 SICAF 영화제 팀장과 18년 전 영화제를 방문했던 김상화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집행위원장과 함께 참가하였다. 김상화 집행위원장은 영화제를 방문한 첫날 바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나도 변한 게 없네’ 라고. 

히로시마 영화제는 변한 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에 열린 제4회 대회부터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옆에 자리한 아스테르 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의 많은 영화제들이 행사를 치르기 위해 영화관부터 고민하고, 재정상황에 따라 영화관을 옮겨 다녀야하는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 아스테르 플라자는 전문적인 영화 상영관이 아니다. 대, 중, 소 홀로 이루어진 일종의 문화회관에 가깝다. 일본 내부에서는 전문적인 영화 상영관에서의 상영을 원하는 목소리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장소는 바뀌지 않았다. 20여 년을 같은 장소에서 개최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숙박 시설도 있어서 영화제를 찾은 경쟁 감독들은 건물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다. 전시 및 워크숍도 같은 건물 안에서 열린다. 영화제의 모든 행사가 한 공간에서 열린다. 그래서 사람들도 한 공간에 모인다. 일본 애니메이션 관계자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다. 개막식에 참가해서 잠깐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영화제를 보러 온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온갖 교류가 이루어진다. 행사기간 내내 행사장은 관계자들과 애니메이션 팬들로 가득 차 있다. 명실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제다. 

손으로 직접 만든 홍보물
손으로 직접 만든 홍보물
학생 마켓에서 열린 세미나 현장
학생 마켓에서 열린 세미나 현장

영화제 기간에는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1층에서 열리는 학생 필름 마켓에서는 일본에 있는 애니메이션과 부스가 설치되고, 학교를 소개하는 각종 강연, 상영회, 세미나가 열린다. 5층에 있는 NEXUS POINT에서는 비즈니스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이 이루어진다. 자신의 작품을 들고 와서 상영할 수 있는 Frame In이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자신의 작품 상영을 알리는 종이를 직접 손으로 써서 행사장 곳곳에 붙이러 다닌다. 손글씨와 직접 그린 그림이 어떻게 보면 관공서 같아 보이는 건물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처음 영화제를 찾았을 때, 한국과는 다른 손글씨의 친근함이 인상적이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영화제의 전경 중 하나이다. 

히로시마 영화제에서 가장 놀라운 건 경쟁부문의 상영이다. 놀랍게도 일본어 자막이 없다. 상영 전 안내방송을 통해 ‘모든 상영은 원어로 상영됩니다’라고 방송한다. 일본에서 하는 영화제에 일본어 자막이 없다니. 관객의 대부분이 일본 사람이건만.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일본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당히 자막 없이 상영하고 있다. 주변에 있는 관객들도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더 놀라웠다. 이유가 무엇이든 대단한 ‘깡’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상영할 수 없다. 

2014년 영화제 포스터 / 2008년 행사장 사진
2014년 영화제 포스터 / 2008년 행사장 사진

올해로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30년을 맞았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화제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언제나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영화제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영화제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영화제를 지원해주는 각 기관들은 이러한 양적 성장을 주요 평가지표로 삼고 있다. 원하건 원하지 않든 간에 일단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 향후 지원을 약속받을 수 없다. 이러한 한국의 영화제들과는 달리, 히로시마 영화제는 그저 해오던 것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히로시마 영화제에는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영화제를 지켜오고 있는 상징 같은 인물이 있다. 바로 페스티벌 디렉터인 기노시타 사요코이다. 히로시마 원폭을 다룬 애니메이션 <피카돈>의 감독 기노시타 렌조와 함께 영화제를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히로시마 영화제가 변하지 않고, ‘깡’있는 영화제로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건 기노시타 사요코라는 영화제의 중심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그녀를 다른 자리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 때 그녀는 영화제를 운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영화제를 책임질 사람(또는 조직)’이라고 이야기하였다. 한국은 많은 영화제가 있다. 그리고 종종 책임지는 조직도 사람도 명확하지 않은 영화제를 본다. 참여하고 있는 조직이 너무 많아 서로 눈치만 보고, 불만만 이야기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영화제도 있다. 같은 조직에서 운영하더라도 조직의 시스템상 책임자가 바뀌게 되는 경우나, 지원기관과의 충돌 과정에서 바뀌는 경우도 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면 무엇이 이루어질 수 없다. 히로시마 영화제는 어떻게 보면 미숙해 보인다. 그러나 영화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는 기노시타 사요코는 그녀의 방식대로 다시 다음 영화제를 준비할 것이다. 그렇게 흔들리지 않고 영화제를 지켜온 30년은 결코 우습게 볼 수 있는 세월이 아니다. 그녀의 깡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영화제가 뚝심있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영화제의 활동가와 기획자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아닐까.
 
상영관 앞 작가 부스
상영관 앞 작가 부스
상영관을 메운 관객들
상영관을 메운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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