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아카이브의 유령들>과 퇴장하는 공간들
<아카이브의 유령들(김종관, 2014)>
얼마 전 오랜만의 단편 작업을 했다. <아카이브의 유령들>이라는 제목으로 4편의 단편을 묶었다. 한국영상자료원 4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자료원의 4가지 키워드를 뽑아 테마별로 하나씩 이야기를 만들어 본 것이다. ‘발굴’, ‘복원’, ‘보존’, ‘상영’이라는 테마로 각기 ‘상실’, ‘훼손’, ‘수집’, ‘극장’에 대한 부테마를 잡아 내용을 구상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에게는 꽤나 즐거운 작업이었는데, 영상자료원의 기능과 지향점을 키워드로 정리해 놓으니 내가 영화 안에서 추구하는 이야기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네 가지 이야기 중 두 개의 이야기는 한국영상자료원이라는 공간을 이용해서 만들었고 두 가지 이야기는 외부 로케이션으로, 나름 의미 있는 공간을 찾아 만들었다.
외부 로케이션으로 찍은 에피소드는 발굴과 보존이라는 테마로, 한국의 근대소설의 한 대목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와 작업을 했다. 나운규가 만든 마지막 영화의 원작자 이태준에 관한 이야기와 아름다움과 비극이 함께했던 화가이자 작가 나혜석의 삶을 모티브로 그들이 살고 활동했던 공간을 찾아 화면에 담았다. 성북동, 원서동, 운니동, 익선동 등의 공간들이다. 그들이 활동했던 100년 전과는 많은 변화가 있는 곳이지만 지명과 집터를 아직까지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인들이 지나던 거리의 자취들이 사라졌음에도 다른 집들이 채워진 공간에 카메라를 대고 그들의 흔적을 찾았다. 이태준의 생가가 있던 성북동과 그가 전차를 타고 앞을 지났던 안국동, 윤동주와 이상과 김동인이 오갔던 종로 어귀의 뒷골목을, 유령을 쫓는 듯 카메라로 담았다.
낡은 건물은 사라지고 삶의 공간 곳곳이 역사에서 퇴장한다. 100년 전의 삶은 박제된 유물로만 남았다. 그나마 그곳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지명으로 알 수 있는데 그 지명 또한 표기명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유령을 부르고 상상을 덧대어 공간을 복원할 수 있던 지명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상상의 복원조차 실마리를 잃어가는 중이다. 상실과 훼손의 역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이 영상자료원의 큰 기능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오래된 필름뿐 아니라 터조차 찾을 수 없는 공간과 지명의 역사를 보존한다.
이번 단편 작업을 통해 난 과거의 환영을 좇았지만 현재의 거리들도 담았다. 낡았으나 버티고 있거나 곧 스러져갈 거리와 건물의 역사가 카메라에 담겼다. 아마도 후대의 사람들은 ‘추억하는 추억의 공간’을 보게 될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영화는 어떠한 공간을 담고 많은 영화들은 현재의 공간을 담는다. 하지만 현재의 공간들을 치장 없이 담기에는 독립영화가 유리하다. 통제되지 않는 현장에서 우연의 선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작은 영화들은 계절과 공간을 변형 없이 오롯이 남긴다. 난 작은 영화를 만들면서 공간에 대한 애정을 배웠고, 덕분에 선대의 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 공간에 대한 어떤 애정을 담았는지를 보게 되는 약간은 예민한 시선을 가진 관객이 될 수 있었다. 그로 인한 미래의 관객에 대한 믿음도 생겼다. 영상자료원의 하드 디스크에 담길 지금의 공간과 계절과 지명들은 백 년 후의 관객들에게 잃어버린 세계를 백 년 후의 창작자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으로 나의 가난한 영화들이 만들어줄 보상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