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장군의 수염
올해 인디애니페스트의 개막작(들 중의 하나)은 신동헌 감독의 <장군의 수염>이다. 원래 이 작품은 장편 라이브액션 영화인 <장군의 수염>에 삽입된 영상이다. 그래서 이제껏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점은 적어도 필자와 같은 자칭 애니메이션 연구자에게는 꽤나 곤혹스럽게 만들면서 등장했다. 연구자에게는 발굴자의 책무도 따른다. 다른 분야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여전히 발명이면서도 발견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작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전체에 해당하는 영화와 부분에 해당하는 애니메이션 (흔히 말하는 액자 형식으로서의 작품)과의 관계를 살펴야 하고, 그 영화의 원작에 해당하는 소설 (무려 이어령 선생의 소설이자, 무려 김승옥 선생의 각색이었다)과의 관계를 추가해야 하며, 그 소설 속에서 애니메이션에 해당하는 소설 주인공이 남긴 소설 (그러니 이 역시 액자에 해당한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중첩되고 맞물리고 전체 속에 재배치되는 겹겹의 액자들을 이 글에서 다룰 수는 없다. 고작 원작(들)과 관련해서 언급하자면, 원작 소설에서는 장군이 ‘쿠데타’의 장본인이지만,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독립군’의 수장으로 수정되었다는 점 정도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수정이라고는 해도, 오히려 그 점이 핵심을 찌를 정도이다)
각설하고 이 작품을 말하자면, 신동헌 감독의 <장군의 수염>이라는 애니메이션은 어쩌면 한국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모더니즘 카툰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물론 여기서 모더니즘이라고 하면 심도 깊은 미학적 이론에 처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고전적 애니메이션 스타일과의 단절을 일컷는 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에서 모더니즘을 말할 때는 미국의 UPA 스튜디오와 구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지칭한다. 이들 작품은 단지 단순한 스타일 추구에만 그 성취가 국한되지 않는다. 컬러와 선의 절제, 이를 통한 캐릭터와 배경의 단순화, 그리고 입 모양과 동작의 최소화 등이 결부된 시각적 이미지는 그 이전까지 리얼리즘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면서 라이브 액션의 영역으로 확장하려 했던 디즈니의 장편 프로젝트 (그리고 여타 메인 스트림 애니메이션의 추종 세력)와 단절하려던 미적 시도였다. 한마디로 서사와 산업적 규모, 그에 따른 착취적 노동 시스템을 발판으로 삼아 거대한 괴물로 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인더스트리를 겨냥한다. 이러한 형상화를 통해 모더니즘 카툰이 전달코자 했던 내용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위트있는 풍자였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데츠카 오사무 (그는 이미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어느 정도 서구의 모던 카툰의 물적 토대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에게도 파급을 미쳐서 그의 몇몇 실험적 작품들은 온전히 모더니즘 카툰의 한 줄기를 이룬다.
물론 모더니즘을 스타일에만 국한시킨다면 그리 큰 의미가 없을 테다. <장군의 수염>이 스타일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이야기와 맺는 관계에 있을 테다. 당대의 모던한 스타일의 카툰 애니메이션이 그랬듯이, <장군의 수염>은 부조리함을 형상화한다. 신동헌 감독이 어떠한 경로에서 당대의 모더니즘 조류와 맞닿게 되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가 만화가로서 활동을 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 간결한 스타일의 카툰에 익숙했다는 점 정도를 추정할 뿐이다.
이 작품을 인디애니페스트의 개막작으로 선정한 점은 독립 애니메이션 협회가 일종의 모색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이 단지 어른을 모셔옴으로써 (그리고 명예 회원의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부재하는 아버지의 자리를 상징적으로 채우기 위한 정도로는 아닐 것이다. 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서 밝히듯, “한국 창작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서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 속에 함께하며 살아있는 창작자의 실천의 결실들을 되짚어 보며 우리에게 제시한 애니메이션의 길을 찾아보는 소중한 시간”이길 바라는 의도가 있다. 이 작품을 가슴 벅차게 바라본 관객 (다수는 현재 뜨겁게 작품 창작에 매진하는 애니메이터들이다)들이라면 자연스레 <장군의 수염> 속 인물들에 자신을 투영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때로 동일시의 대상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주인공일 테고, 때로는 행진을 이끄는 ‘독립’군의 장군일 테고, 어쩌면 장군의 수염을 그저 흉내 내는 따라쟁이로서의 대다수일 수도 있을 테다. 연구자(들)의 나태함과 무지 때문에 이제껏 빛을 보지 못했던 작품인 만큼, 이 작품의 온전한 가치가 현재의 창작자들을 통해서 다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적어도 모던한 스타일이 추구했던 지향점이 무엇인지, 그것이 싣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곱씹다 보면 뭔가 답이 나올 수 있을 테다. 이제는 당연한 듯 여기는 (감당 못 할) 장편의 제작 규모와 그걸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누군가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제작 환경을 타개할, 그런 혜안이 갖춰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