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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영화제를 둘러싼 표현의 자유와 관객의 볼권리

[칼럼]영화제를 둘러싼 표현의 자유와 관객의 볼권리 대표 이미지

지난 10월 11일 폐막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한 편의 영화로 인해 언론과 여론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그 영화는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 중 일부의 문제를 다룬 <다이빙 벨>이었다. 영화가 상영되기도 전에, 이 영화를 상영해야 말아야 하나 논란이 벌어진 이 참극은 웃지 못할 해프닝에 다름 아니다. 그런 논란이 벌어지는 동안 영화를 본 사람은 제작진과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밖에 없었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는 영화제가 끝난 직후까지 <다이빙 벨>을 보지 못했다.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단 2회 상영됐을 뿐이다.) 서슬 퍼런 검열이 판을 치던 유신 시절에는 시나리오를 사전 검열해 영화를 찍지 못하게 하거나,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찍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인 <다이빙 벨>은 한 두 줄의 시놉시스만을 가지고 영화를 상영하면 되느니 말아야 하느니 논란이 벌어졌으니, 얼마나 가당치 않은 일인가?

표현의 자유와 관객의 볼 권리가 침해받지 않는 유일한 해방구인 영화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유감스럽게도 처음이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에 대한 사전 심의가 남아있던 1996년 처음 개최되었다. 당시 월드시네마 섹션에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문제작 <크래쉬>가 상영되었는데, 영화수입사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전신인 당시 공연물진흥협의회(이하 공진협)의 심의를 의식한 나머지 삭제된 필름을 영화제에 제출했고, 이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관객들은 영화제에서마저 삭제된 필름을 봐야 하냐며 원성이 자자했고, 영화가 끝난 극장 앞에서 영화 매체들은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소감을 묻는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영화제 측에서는 프린트 상황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수입사에서 제공한 삭제된 필름을 상영했던 것이다. 크로넨버그 감독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상영을 허락했을 것인가? 국제적인 망신이라는 국내외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1997년에는 김동원 감독의 <명성, 그 6일의 기록>을 비롯한 독립영화들을 감독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공진협의 심의를 받아 물의를 빚었다. 당시 독립영화인들은 공진협의 심의를 부당한 검열로 받아들였고, 심의를 받는 것에 심한 거부감이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던 남포동 거리에서는 독립영화인들과 관객이 주축이 되어 영화제에마저 예외없는 심의규정을 적용한 공진협과 감독에게 양해와 허락 없이 심의를 받은 영화제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고, 집회를 막는 경찰과 충돌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공진협의 영화제에까지 적용되는 과도한 심의 체계에 대한 거부는 인디포럼97의 상영 중단 사태까지 몰고 올 정도로 당국과 영화계의 첨예한 사안이었다. 그래서 제3회를 맞는 1998년부터는 영화제를 위한 심의면제 추천 제도가 생겨서,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에 한해 심의를 면제하는 제도가 생겼다.(단서 조항이 있었는데, 3개국 이상의 영화를 상영하는 3회 이상의 국제영화제에 한한다는 조항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제도였고, 이후 모든 영화제로 확대되며 정착되었다. 그래서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는 검열이나 심의에 대한 커다란 문제 없이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북한 영화를 상영할 때나, 몇몇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영화가 상영될 때 당국의 비공식적인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큰 무리가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19회를 맞는 올해, <다이빙 벨>이라는 영화를 두고 조직위원장인 부산시장이 혹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면 안된다는 압력을 넣은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난 정부 때부터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의 영화를 상영할 경우 직간접적인 압력이 행해졌음을 영화제를 하는 사람들은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테면 촛불집회에 관한 영화를 상영할 경우, 4대강에 대한 영화를 상영할 경우, 제주 해군기지 강정의 문제를 다룬 영화를 상영할 경우 그런 일이 비공식적으로 있어왔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의 경우 <천안함>을 두고 정부의 압력이 행해졌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특정 영화의 상영을 두고 영화가 상영되기 전부터 문제를 삼을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본 후에 이 영화가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 묻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그로인해 발전적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진다면 좀더 건강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상영을 금지시켜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지금의 표현의 자유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비단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까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고, 관객의 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영화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후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영화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부분에는 표현의 자유가 한껏 신장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얼마 전 장률 감독으로부터 슬픈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중국의 한 작은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갔는데, 당국의 검열과 탄압으로 영화제가 열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영화제 관계자들도 모두 피신하고 단 한 사람만 남은 상황에서 심사위원들은 그래도 심사는 해야 한다며 숙소에 모여 DVD로 영화를 보고, 어떤 영화에 수상을 결정했다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어떤 감독은 열리지 못한 영화제의 수상자가 된 것이다. 이것을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 아닌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금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움직임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영화제들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단지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문화적으로 점점 후져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신호이다. 당국의 눈치를 보며 상영할 영화와 그렇지 못한 영화를 선택한다면 영화제로서의 생명은 이미 잃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사회는 더 이상 지탱할 힘을 어디서부터 얻을 수 있겠는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가 끝난 이후의 후폭풍을 걱정했다. 절대 후폭풍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라면, 그런 부당한 움직임에 강력히 항의하고 자신의 볼 권리와 어떤 영화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 지금의 표현의 자유와 볼 권리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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