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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치맛바람

이규웅, 1967

[한국영화걸작선]치맛바람 대표 이미지
옛 영화는 자주, 영화 자체의 재미라기보다는 그 영화가 지니는 문화사적 맥락의 정보들 때문에 보게 된다. 특히 타 장르와의 교섭이 활발한 작품들, 대중영화로서 당대 유행하고 있던 주류적 흐름에 충실한 작품들은 더 그러하다. 1967년 이규웅 감독의 <치맛바람>도 그런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는 수작이 아니다. 사극을 주로 연출해왔던 이규웅 감독이 만든, 정말 몇 편 안 되는 현대물 코미디이다. 그래서인지 코미디 연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리듬감과 속도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고, 연기로부터 소품, 카메라 워크에 이르기까지 희극적 과장이 들쭉날쭉하여 균형이 어그러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당시 드라마와 쇼에 사운을 걸고 있던 상업적 민방 동양방송(TBC)의 인기 텔레비전드라마의 리메이크이고, 1960년대 후반의 수많은 코미디영화들의 흐름 속에 놓여있음을 생각하면, 매우 다양한 문화사적 맥락을 읽어낼 흥미로운 작품임을 깨닫게 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방송드라마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원작 공급처였다. 일찍이 해방 직후 연속극의 시작점에 놓인 <똘똘이의 모험>(1946)이 영화화된 것부터 시작하여, 연속극의 안정적 편성의 시작인 <청실홍실>(1956)부터는 인기 연속극은 으레 영화화되는 수순을 밟았고, <로맨스 빠빠>, <박서방>, <빨간 마후라>, <남과 북> 등 1960년대의 수작 영화 중 적지 않은 작품이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라디오드라마였다. 1964년 동양방송의 개국과 함께 녹화가 가능해져 텔레비전 연속극이 발전하고 있었고, 따라서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텔레비전드라마의 영화 리메이크가 간간이 나타나는데, 텔레비전드라마의 리메이크영화는 그리 성공적인 작품이 많지 않다. 아무래도 영상물을 또 다른 영상물로 옮기는 이러한 리메이크는,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기 힘들게 했기 때문이리라. 

이 작품의 원작인 드라마 <치맛바람>은 1967년 동양방송 주말연속극의 또 다른 이름인 ‘유호극장’의 작품이다. 극작가의 이름을 내걸고 같은 시간대에 한 작가가 계속 집필한 사례는 한국방송사에서 전무후무하다. 그 정도로 당시 유호는 매우 인기 있는 작가였고, <치맛바람>은 1965년부터 시작된 유호극장의 한창 시절 작품이다.

유호는 희극에 능한 작가이며, 특히 도시 중간계층에 속하는 평범하고 속물적인 인물들이 벌이는 희극적 사건을 삽화적으로 펼쳐놓는 것을 좋아한다. <치맛바람> 역시 그러하다. 가난한 월급쟁이 ‘장’은, 아내, 아버지, 대졸 실업자와 여대생 동생, 중학생 아들까지 먹여 살리느라 취미는커녕 담배마저 끊는다. 견디다 못한 아내 ‘진’이 계를 들어 돈을 벌고자 하는 데에서 사건이 시작된다. 돈 주무르는 수완이 능란한 계주 ‘풍’을 비롯한 계꾼 여자들은 한복 치마를 펄럭이며 몰려다닌다. 집단화된 여자들은 목소리가 커지고 집단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도 하는 것에 비해, 오히려 남자들은 이들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쩔쩔 맨다.

바깥으로 나돌며 돈을 만지는 드센 여자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영화는 이미 1950년대부터 흔했다. 이 겉멋 든 여자들은 남자 머리꼭지에 올라선 것처럼 굴지만, 결국 이들에게 몰려드는 남자들과의 관계, 혹은 금전 관계의 실패로 극적 처벌의 결말을 맞게 된다. 이런 보수적 시각은 오래 유지되지만, 1960년대 후반에 놓인 이 작품은 1950년대의 작품들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치맛바람 일으키는 계군들은, 1950년대의 <자유부인>이나 <여사장>처럼 미국 여배우처럼 차려입은 멋진 여자들이 아니라, 그냥 한복 입은 중산층 아줌마들이다. 또한 이 여자들에게 ‘껄떡대는’ 남자들 또한 돈 많은 사장님만이 아니라, ‘진’의 시아버지나 룸펜 시동생처럼 장삼이사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1950년대에 눈 뜨기 시작한 물욕과 성욕의 적극적 구현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 대도시의 보통사람들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한편, 치맛바람이 극적 처벌을 받긴 하지만, 아내가 나서서 계라도 하며 살아나가는 도시 서민의 생활방식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1960년대에 가정의 경영권은 이미 주부에게 넘어왔고, 주부는 시아버지부터 시동생의 소소한 지출까지 간섭하면서 재태크에 눈을 돌리는 경제적 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원작인 드라마 동영상이나 대본이 남아있지 않아 영화와의 차이를 정교하게 비교할 수는 없으나, 원작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오리지널 대본과 비교해 보면 영화화 개작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삽화의 수를 줄이고, 성적 농담과 노출, 슬랩스틱코미디 스타일의 과장된 연기를 크게 강화했다. 즉 당시에 인기를 모으고 있던, 서영춘 등 코미디언의 개인기를 중심으로 젠더 선입견에 기대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영화의 관행을 받아들인 것이다. 가정과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희극적 상황을 그려내는 데에 치중한 유호의 텔레비전드라마의 경향이, <남자 식모> 같은 영화가 주를 이룬 코미디 영화의 경향으로 흡수되어 조정된 양상인 것이다. 비교적 원작에 가까웠을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 ‘진’이 사업상 만난 무 사장과 요정에서 춤추는 장면이 삽입되고, 뚝섬유원지에서 수영복 바람으로 춤추는 장면이 반복되며, 특히 뚱뚱한 여자 코미디언 오천평과 서영춘과의 엎치락뒤치락 장면을 길게 배치하는 등, 내용이 많이 추가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렇게 자극의 수위를 놓여놓았으니, 결말 역시 좀 더 과격하거나 억지스러워질 수밖에 없는데, ‘장’의 계몽적인 일장연설로 계꾼들이 개심하는 결말도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없다. 

이규웅이 낯선 장르 코미디를 만나 이 작품은 다소 어설펐지만, 이후 그가 코믹한 사극인 <공주 며느리>, <꼬마 신랑> 등을 연출하는 데에 이 작품은 중요한 다리가 되었을 것이다. 젊은 미모의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희극적 캐릭터를 귀엽게 잘 소화해낸 남정임은, 이후 이규웅의 코믹한 사극의 주인공을 도맡았다. 소심한 남편 ‘장’을 맡은 허장강의 계산된 정교한 연기, 고령에도 불구하고 뚝섬유원지의 록밴드 앞에서 엉터리 영어로 팝송을 부르며 판을 제압하는 아버지 김희갑의 놀라운 감각, 남정임과 1950년대 아프레걸을 도맡았던 이빈화의 과감한 비키니, 그리고 유호 작품에서 허랑방탕한 삼촌(시동생) 역을 단골로 맡았던 김순철의 대체 불가능한 시동생 연기 등은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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