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이어도
김기영, 1977
<하녀>(1960)를 만든 김기영 감독의 후기 영화 중 <이어도>(1977)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구조는 단순하다. 호텔을 개발의 논리를 앞세워 홍보책임자인 선우현이 해녀들이 사는 ‘파랑도’를 휘젓고,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현대(산업)와 전통(신화)의 대립을 보여준다. 선상에서 사라진 천남석의 이력을 추적하면서 현재와 과거의 사연이 교차하고, 인물들의 비밀스러운 사연은 하나둘씩 옷을 벗게 된다.
이 작품을 정치적이거나 철학적으로 보고자 하는 이에게는 생명이 자랄 수 없는 ‘환경론’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고, 신화적 상상력이 끌리는 이에게는 무당의 굿과 운명이 승리를 거두는 후반부가 인상 깊게 남을 것이다. 김기영의 영화를 컬트의 성전에 모시고자 하는 이에게는 시체로 발견된 천남석과 민자가 정을 통하는 ‘네크로필리아’의 장면을 두고두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김기영은 이 모든 것이었다. 초기부터 그의 영화에는 ‘남자의 씨’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전통에 대한 집착이 짙게 배어 있었다. 예를 들어, 대표작 <하녀>는 가부장의 씨를 둘러싼 여인들의 싸움으로 함축할 수가 있다. 가부장의 권위는 60년대 초반 하녀라는 새로운 문화가 본격화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녀>가 서울에 사는 중산층 가정의 근간인 ‘씨’가 흔들리는 이야기라면(경제적 압박과 하녀 유입의 사회적 변화로 인해), <이어도>는 섬으로 유입된 남자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씨를 찾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도와 1977년이라는 시차는 자연스럽게 상황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두 영화는 거울처럼 전도된 좌우가 뒤바뀐 전도된 양식으로 표현된다. <하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외부에서 이입된 ‘하녀’이고, <이어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실종된 ‘천남석’과 개발을 위해 들어온 ‘선우현’이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다룬다는 점에서 김기영의 관심사는 일관되었다.
선상의 홍보 파티 이후 천남석이 실종되자 살인자의 누명을 쓰게 된 선우현은 섬에 들어온 그가 누구인지를 캐기 시작한다. 첫 번째로 만난 무당은 천남석 집안을 파멸로 이끈 이어도의 저주에 대해 들려주고, 이 섬의 풍속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묘사한다. 선우현은 천남석의 친구 고춘길, 동거녀 박 여인, 신비스러운 술집 작부로부터 천남석이 행한 사연들을 듣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천남석은 마을의 돈을 끌어모아 전복양식업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박 여인은 그를 도와 돈을 빌리기 시작하였고, 천남석의 양식 사업은 폐수 오염으로 인해 실패하고 만다. 결국, 돈을 빌려준 신비의 여인에게 천남석은 끌려갔다는 것이다.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과정처럼 보이는 전개지만 실상 이 영화의 비밀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운명으로 묶인 남녀의 관계이다. 후반부에 술집 작부는 자신이 민자라는 섬 여인이었음을 자백한다. 민자는 어린 시절 천남석과 가약을 맺었다. 무당의 굿판에 의해 천남석의 시체가 발견되자 섬사람들은 그녀에게 시신을 넘겨준다. 그것은 천남석의 어머니가 민자에게 부탁한 대를 이어달라는 약속의 실행이자 운명적으로 묶여 버린 남녀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기묘한 운명론은 모든 현실을 뒤엎어 가려 버린다.
천남석의 씨를 받아들인다고 이것은 실패한 전복양식처럼 죽어버린 씨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이 아니라 기꺼이 신화와 전통의 쇼(굿판)를 벌인다. 왜 그래야 하는 것인가. <이어도>의 궁극적인 질문은 여기에 있다. 전통과 현대가 갈등을 벌이는 김기영의 영화에서 그가 바라보는 인류학적인 시선은 인간 사회는 이 쇼(굿)를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 그것을 전통이나 신화라고 부르든, 가부장의 이데올로기라 부르든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김기영의 영화 속 사회는 그럴듯한 쇼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이 서로 뒤엉키면서 벌이는 욕망의 가학과 피학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삼 년 만에 섬으로 돌아온 선우현이 민자와 만나는 장면이다. 민자와 함께 있는 아이는 천남석이 아니라 선우현의 아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해녀들의 섬 파랑도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외부 남자를 들여 해녀를 키우는 방식을 고수할 것이다. 이곳은 전복양식과 같은 테크놀로지가 침범하기 어려운 문명이 바로 불모가 되는 땅이다. 그리하여 죽은 어부와 해녀들이 가는 이상향 이어도는 이 영화의 중요한 제목이 된다. 이어도는 섬사람들에게 유일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이곳은 오직 상상을 통해 그들의 현실에 거주하는 삶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이것을 영화 속의 유명한 테크닉을 통해 경험한다. 영화 속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광활한 바다를 ‘줌 인’ 하는 장면은 상상의 견인이라 부를 수 있는 지독한 삶의 집착이다. 그것은 썰물에 떠밀려 온 천남석의 시체를 두고, “내가 데려왔다.”라고 외치는 무당의 주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