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시간을 달리는 소녀
호소다 마모루, 2006
대다수 고등학생들에게 고교 시절이란 별로 재미없는 기억투성이다. 요즘 같아선 학교 폭력을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 평범하게 보낸다 한들 입시지옥에 시달린 기억만 남는다. 결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교 시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10여 년 정도 훌쩍 지나고 나면 좀 더 소중하게 보낼걸 그랬어, 하는 마음에 기분이 얼마나 복잡하고 아련해지는지. 그래서일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빠져든 건 잃어버린 뭔가를 찾은 느낌이었다. SF적인 요소를 이용해 평범한 일상 속에 시간의 비밀과 청춘의 감성을 담았을 뿐 아니라 오래도록 가슴을 설레게 하는 ‘시간에 관한 향수’를 복원했기 때문이다.
소설가 츠츠이 야스타카가 1965년에 발표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1983년 처음 영화화돼 일본영화 역대흥행 1위를 차지했을 당시 10대 중반이었던 호소다 마모루. 그는 23년이 지난 후 그때 그 영화를 보던 자신의 청춘을 떠올리며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30대 이후의 수많은 중년들을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두 명의 단짝 남자친구와 별 삼각관계 없이 심드렁한 학창 시절을 보내던 여고생 마코토. 우연히 있는 힘껏 달리면 시간을 마구 건너 뛸 수 있는 ‘타임리프’ 능력을 갖게 된 이후 그녀가 보여주는 온갖 소동 속에 호소다 마모루의 코믹한 연출 감각이 돋보인다. 그저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혹은 어제 저녁 메뉴가 또 먹고 싶어서, 아니면 노래방에서 남은 시간을 늘리려고, ‘타임리프’ 능력을 하찮게 써버리는 주인공 마코토의 모습은 단순히 귀여움을 넘어서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후회할 만한 일을 101가지 정도는 단숨에 저지르고도 계속 실수를 연발하던 시절을 정말 확실하게 그려낸다고 할까. 하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지닌 절대 공감의 원천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워져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지는 자신만의 청춘을 기억하는 고연령층(!) 관객의 심정과 시선까지 절절히 읽어내는 호소다 마모루의 자기반영적 연출이 대단히 의표를 찌르는 것이다.
사춘기라는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는 모습 자체를 묘사하는 힘도 대단하다. 어느 날 단짝 남자친구 마미야에게 고백을 받고 당황해 시간을 되돌려버린 마코토가 또다른 단짝 코스케와 그를 좋아하는 후배 여학생을 연결시켜주려고 다시 시간을 되돌리다 엄청나게 꼬인 시간 속에서 허둥대게 될 때.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고, 있는 힘껏 옥상으로 달려 올라가는 마코토의 애타는 모습 속에 깃든 간절함은 시간의 비밀과 성장의 비밀을 함께 말해준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이런 마코토의 소동을 조용히 감싸는 일상의 빛과 공간이다. “어떻게든 시간은 하나로 흐르고 있고, 그 때문에 매순간 충실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호소다 마모루의 메시지는 이런저런 수다로 채워진 한가로운 학교의 풍경 속에, 매미 소리와 느긋한 오후의 햇살에 감싸인 채 자전거를 밀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쩐지 헤어지기 싫었던 그 골목 어귀에, 저녁을 먹고 나와 노을이 질 무렵 산들바람이 불어오던 강둑에서의 산책 속에 넉넉하게 퍼져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호소다 마모루는 이런 아련한 추억들이 여전히 우리의 삶과 조우하고 있으며, 매번 반복되는 일상도 시간을 되돌리면 또 다른 의미를 남기는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전한다. 그러니, 매일매일 후회의 파노라마를 만들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은 마코토의 하루하루에 절대 절대 절대! 공감할 수밖에 없다.
제목: 시간을 달리는 소녀
제작년도: 2006년
감독: 호소다 마모루
목소리출연: 카키우치 아야미, 나카 리이사
애니정보 바로가기: http://www.anidb.or.kr/_Animation/animation/md_basic.asp?nation=F&p_dataid=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