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밥묵자
민성아, 2007
제목이 투박해서 참 멋진 ‘밥묵자’는 강렬한 메시지가 있거나 자극적인 유머가 있는 작품은 아니다. 처음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 편안한 친구를 만나 듯 그렇게 첫 만남을 가졌던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어떻게 보면 ‘밥묵자’에는 눈에 보이는 메시지 이상으로 더 다양한 해석과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요소를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서울을 벗어나 어느 시골로 가면 있을 듯 한 배경에 한 개구쟁이 남자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호기심 많은 남자아이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만나는 모든 것이 즐거운 놀이터이다. 그리고 집에 있는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먹을 밥상을 차리고, 이후 함께 밥을 먹는 단순한 내용이다.
지만,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뛰어난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밥묵자’는 나에게 가장 뛰어난 단편 애니메이션 중에 한편으로 남아있다. 영상자료원의 요청으로 칼럼을 쓰게 되었고, 어떤 애니메이션을 선택할까 하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밥묵자’가 떠오른 이유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작품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2007년 CGV에서 느꼈던 그 느낌과는 또 다른 기분 좋음이 있었다. 멋있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빼어난 미모를 지니지도 않았지만, 왠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볼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밥묵자’에는 다양한 그 시절의 그리움으로 기억할 수 있는 소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익어가는 누런 벼가 보이고, 가슴까지 끌어올려 입은 바지는 어려웠던 그 시절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동네 개구쟁이의 즐거운 여흥을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의상이었다. 그리고 꼬리에는 개구쟁이가 묶어버린 하얀 실을 달고 날아가는 잠자리, 무슨 일인가 짖어대는 동네 누렁이, 열심히 뛰어놀다가 밟아버린 누렁이의 똥 이 외에도 감독의 추억에 남아있을 것 같은 붉은 꽈리 열매... 이 모든 것을 더욱 리얼하게 해주는 사운드는 나를 ‘밥묵자’의 팬으로 만든 것 같다.
‘밥묵자’는 정신없이 일상을 보내는 우리에게 느린 하루지만 참 행복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웃음소리가 좋고 할머니의 푸근함이 그립다. 그렇게 뛰어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양한 행복이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밥을 잘 먹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할머니의 말... 어떻게 보면 ‘밥묵자’에 나오는 그 말은 보는 사람들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한다. 그리고 ‘밥묵자’라는 말의 어감과 함께 한국 사람의 정서에서 밥이란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서로의 정을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심적으로 어렵거나 불편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기도 하고,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외로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물론 1인 가구로 변화하는 세상이기에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함께 밥을 먹음으로서 할머니가 개구쟁이 손자에게 보여주는 사랑을 볼 수 있고, 그 할머니의 사랑을 손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서로 소통하는 시간이 된다.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은 한국종합예술학교 애니메이션 전문사 과정을 졸업한 민성아 감독이다. ‘밥묵자’로 주목을 받은 이후에도 꾸준하게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사계절을 표현한 ‘다섯 번째 계절’이라는 단편을 만들었고, 그 이후에는 올해 7월 개봉 예정인 극장용 장편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스텝으로 일을 하였다. 이후에도 중국으로 가서 그곳의 한 회사에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기도 하고, 현재는 한국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작업하고 있다. 참 재능도 많고 꾸준하게 작업을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에 한번 만나보기로 했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다. 5월이 되면 한번 시간 내서 함께 밥이나 먹어야겠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아직 이 작품을 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보시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연락을 해서 대뜸 “밥묵자”라고 얘기해 봐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