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여사장
한형모, 1959
<여사장>(1959)은 <자유부인>(1956) <순애보>(1957)를 계승하는 한형모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경향성을 보여준다. 1950 ~ 1960년대 한국 사회를 감싸고 있던 근대적 활기에 대한 동경이 역연히 배어 있는 이 영화는 압축적 도시화 과정에서 노출된 무분별한 서구화에 대한 경계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근대적 ‘가치’와 ‘스타일’에 대한 강렬한 끌림을 형상화하고 있는 이 영화는 서구의 생활방식과 사고, 말을 모방하는 작중 인물들, 근대적 인간형에 대한 묘사, 할리우드 장르 영화에 대한 물신화를 통해 이런 특성을 확인시켜 준다.
<여사장>의 원작은 1948년 무대에 올라간 연극 「여사장 요안나」이다. 「여사장 요안나」는 서양 문화의 졸속적 영향을 받은 당대 여성에 대한 경고, 여권신장에 대해 한국의 여성들이 갖고 있는 그릇된 추종을 지적하기 위해 창작된 계몽성 짙은 희곡이다. 영화는 ‘신여성’이라는 여성잡지의 사장인 요안나(조미령)와 취업 준비생 청년 김용호(이수련)의 갈등을 기조에 깔고 있다. 두 사람은 시내 공중전화 부스에서 승강이를 벌이게 되는데, 용호가 신여성사의 신입 기자로 지원하게 되면서 면접에서 재회한다. 용호에게 당한 모멸을 앙갚음하려는 생각에 요안나는 용호를 채용한다. 요안나는 타협을 모르는 완고한 성격의 용호와 자주 부딪히지만, 용호의 지조와 의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종래에는 요안나는 회사를 용호에게 맡기고 전업주부가 되고, 신여성사는 용호가 경영을 시작하자마자 번창해간다.
<여사장>에는 서구식 모더니티에 대한 거부와 동경이 기이하게 공존한다. 자유연애와 평등주의, 여성주의 등의 서구적 가치를 도덕적 일탈과 정신적 해이로 추궁하던 봉건적 의식이 텍스트를 장악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근대 물질문명에 대한 호기심과 매혹이 싹트고 있었다. 이는 요안나라는 모순적인 인물에 용해되어 있다. 요안나는 근대 이행기의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이다. 그녀에 대한 영화의 태도는 분열적이다. 전쟁 이후 등장한 새로운 여성상으로 볼 수 있는 요안나는 소비자본주의와 가치, 신문물의 유입으로 인한 혼란이 그 몸에 아로새겨진 존재들이다. 의상이나 화장법, 대화방식,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 일정한 교양과 격식을 갖춘 그는 사회활동에 적극적이고 지적이며 남성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독립적인 여성으로서의 모던 걸이다.
요안나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지극히 표피적이다. 거죽만 현대적인 외양을 하고 있을 뿐 속 빈 강정과 같이 묘사되기 때문이다. 부도덕하고, 예의라고는 없으며, 현란한 치장으로 빈곤한 정신을 감추려는 허세의 아이콘으로 형상화된다. 남성들의 수구적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존재로서 여사장은 교양과 품위를 지닌 현대여성이 아니라 이율배반적인 안티 히로인에 가깝다. ‘여존남비’라는 사훈을 가지고 있지만, 종이 공장 사장을 유혹해 종이를 얻으려는 모습이나 숙부에게 사업 자금을 변통하려는 모습에서 이런 특성이 확인된다. 캐릭터 묘사의 표피성은 남성 주인공 용호도 마찬가지다. 두 인물의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함인지, 용호는 무례한 폭군처럼 그려진다. 신참사원으로서의 예의나 기본도 갖추지 못했을뿐더러 요안나와의 애정 관계에 있어서도 자기 확신이 떨어진다. 그의 주관과 결기, 당찬 남성다움은 여성들을 억압할 때만 폭발한다. 이러한 용호를 통해서는 전통적 가치에 충실한 반면 새것에 민감하지 않은 센스 없는 남자, 또는 강직하기는 하나 눈치 없는 남자 또는 강압과 명령으로 일관하는 남성성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리던 현대여성이 전 근대적 남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체제의 숙명 안으로 묶이게 된다는 결말을 보여주는 <여사장>은 계몽의 영화이다. 표면적으로 영화는 당시에 활발하게 개진되던 여성의 사회진출을 부정적인 방향에서 묘사하고,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여성 역할의 퇴보를 강변하는 영화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남녀의 권력관계가 어이없이 역전된다거나(여존남비에서 남존여비로), 남성 불안의 해소를 위해 여성을 지나치게 희화화한 측면, 이를 위해 극적인 일관성을 무너뜨리는 모험까지 불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적인 불균형을 드러내기도 한다. 모더니티에 대한 매혹이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의 측면이 아니라 물신화의 양태를 보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양장과 화장품, 영어, 액세서리 등 서양 문물에 매료된 육체에 비해 그들의 정신은 근대 이전에 고착되어 있다. 정신의 미성숙과 달리 물질은 근대를 소망하는 당대의 불구적 괴리를 여과 없이 노출하는 것이다. 모더니티에 대한 양가적 태도, 한편으로 근대의 활기에 매료된 동시에 중심으로부터 그것을 밀어내야 하는 당위로부터 파생하는 ‘의미의 미끄러짐’이 발생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