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문
유현목, 1977
화제의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의 할배들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박근형이었다. 미중년 대신 ‘미노년’이란 타이틀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매너와 패션센스가 일품인 할아버지였다. 최근엔 드라마에서 중후하고 카리스마 있는 회장역 단골 배우로 기품 면에서도 으뜸인 배우기도 하다. <꽃보다 할배>의 나온 ‘젊은 박근형’의 사진을 보면서 배우 박근형의 궤적이 궁금해졌다. 스크린 속 배우 박근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증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발견한 한 장의 스틸이 바로 유현목 감독의 <문>에 출연할 당시였다.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 복장, 서구인 같은 또렷한 이목구비, 특히 날카로운 눈매가 주는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젊은 시절의 그에게는 지금의 우아함을 넘어선 번득일 정도의 엣지가 엿보였다. 스틸 한 장을 실마리 삼아 그렇게, 아름다운 영화 <문>을 접하게 됐다.
<문>은 <오발탄>과 <잉여인간> 같은 작품을 통해 현실 참여적인 색깔을 견지했던 유현목 감독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가치를 논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해지는 작품이다. 큰 틀은 일본 전통 악기 고또(아악)의 거장이 자신이 평생 매달려온 음악에 회의를 느끼고 한국 가야금의 명인을 찾아오는 내용이다. 얼핏 한국의 문화 우월주의에 입각한 민족주의적 가치 설파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더해지지만, 유현목 감독의 논지는 어느 한쪽을 향한 편들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야기의 화자는 일본 고또의 독보적인 거장 야쯔바시 세이준(박근형)의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한국행을 택한 아들 야쯔바시 중(이영하)이다. 컴퓨터 공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한라산에서 비명횡사한 아버지의 사인을 알지 않고는 자신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하고 길을 나선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아버지가 죽은 원인을 찾던 중 그는 세이준이 일본에서 가야금 가실(방희)의 가야금 연주를 듣고 가실의 아버지이자, 한국의 가야금 명인 우단 선생(최불암)을 만나러 한라산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친의 시신을 확인하러 간 영안실, 동석한 경찰은 중에게 “왜 당신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험준한 백록담 가까이까지 가서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죽음을 맞이하셨을까요?”라고 묻는다. 경찰은 아버지가 손에 꼭 쥐고 있던 것이라며, 뜻 모를 한자가 가득 적힌 은박 종이를 내민다. 전통 가락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긴박한 미스터리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한층 흥미로운 시선을 견지하는 장치다. 중은 마치 형사라도 된 것처럼, 아버지의 최후를 떠올리며 일본에서 가져온 공연 팸플릿 한 장과 가실이라는 가야금 연주자의 이름만 가지고 우단 선생을 찾아 나선다. 극의 미스터리 장치를 한층 더 해주는 것은 신비로운 우단 선생의 존재다. 백록담 정상에 산다는 그는 벌써 세속의 인연을 끊은 지 여러 해째인 인물이다. 중은 그를 수소문하지만, 마을 사람은 우단에게 말 못할 곡절이 있다며 “만나러 올라가봤자, 만나주지 않을거”라며 손사래를 칠뿐이다.
우단의 존재와 함께 기후가 험난한 한라산은 미스터리 구조를 한층 강화해주는 도구이자, 속세를 떠난 우단 선생이 견지하는 예술의 경지를 드러내 주는 훌륭한 장치로 사용된다. 중은 ‘이 계절엔 대낮에도 올라가기 힘든 곳’이자 ‘한라산 특유의 변덕스런 날씨를 조심하라고’ 일컬어지는 한라산을 기어이 거슬러 올라가는데, 정일성 촬영감독이 설계한 이 장면의 신비로움은 가히 압권이다. 한치 앞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안갯속, 등산복도 아닌 슈트 차림의 중이 미끄러지는 가운데, 멀리서 들려오는 가야금 소리가 그를 혼미하게 한다. 슈트 케이스의 추락과 함께 기절한 그는 결국 우단 선생의 별채에서 일하는 산장지기의 도움을 얻게 되고, 그렇게 힘겹게 바라던 만남을 갖게 된다.
사실 중의 아버지가 우단 선생을 찾아간 건 필연적 선택이었다. 자신의 가업을 이어주길 바랐던 아들은 가업계승을 두고 ‘한 인간의 자유의사를 옭아매는 낡은 인습’이라며 반목하고, 그런 아들의 뜻에 따라 가업계승 제도인 ‘이에모토’ 해체를 선언하자, 아악계에선 ‘큰 망신’이자 ‘고또 음악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라며 그를 힐난하고 나선다. 세이준이 우단 선생을 알게 된 건 바로 이때, 자신이 평생 매달려온 음악에 대한 회의에 가득 차 있던 때였다. ‘고또의 소리지만 더 오묘하고 깊은 울림을 가진’ 가야금 소리는 그가 어떻게든 찾아내어야 하는 원류의 소리였다. 우단 선생은 세이준의 바램도 무시한 채 몇 차례나 그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고, 마침내 막무가내로 세이준이 그의 방에 침입하면서 두 예인의 만남은 이루어진다.
유현목 감독은 세이준과 우단 선생의 극적인 만남을 ‘문’ 안에 꼭꼭 숨겨둔다. 문을 통해서 스며 나온 건 엄청난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낼 수 없는 가야금 명인의 연주였고, 이후 그곳을 나와 돌아가던 중 세이준은 최후를 맞게 된다. 작은 방안에서 이루어진 둘의 대면은 결국 영화의 말미, 우단의 플래시백으로 재구성되는데 그 긴장감의 연출은 하나 버릴 것 없이 영화의 정수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세이준은 항일투쟁에 앞장선 우단 선생이 일본인에게 고초를 겪고 칩거하게 된 점을 사죄하지만, 우단 선생은 “예도는 그런 것을 초월해야 하는 것이요.”라며 응수한다. 자신의 음악적 한계를 타파하고자 고또의 원류를 찾아왔고,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각오에 대해서도 “당신이 그런 정도의 속된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한 이 땅에서도 원하는 소리를 찾을 수 없다.”고 꾸짖는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연 우단 선생이 들려주는 연주, 가야금의 가락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손에 의해 빚어진다는 ‘낙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의 정수가 표현된다. 클로즈업된 화면 속, 손가락과 가야금 줄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나지만, 우단 선생은 끝까지 연주를 감행한다. 일본의 문화말살정책으로 고초를 당했던 손가락 병 때문에 연주를 중단했던 그가 그 아픔을 딛고 한 마지막 연주인 것이다. 이 심오한 소리의 세계를 경험하는 세이준, 배우 박근형의 절절한 클로즈업 컷은, 무려 5분 동안 영화 음악 참여한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의 연주로 방 안 가득 빽빽하게 감동의 울림을 채워준다.
1977년 발표한 <문>은 60년대 초기작인 <오발탄>과 <김약국의 딸들>로부터 십수 년 후의 작품이다. 사회 참여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던 유현목 감독이 인터뷰에서 “내 작품으로 이 사회를 개조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감, 절규. 그런 수준이었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다시 영화를 만든다면 평화로운 미의 세계를 연추하고 싶다. 아름다움 속에 진리가 있다. 그것이 인간의 마지막 이상이자 인생의 도달점이 아니겠는가?”라고도 말했다. 굳이 가야금과 교토, 한국과 일본, 항일투쟁이라는 첨예한 재료를 빌려와 현실을 넘어선 예인의 경지를 다룬 <문>은 바로 유현목 감독 자신의 이 같은 작가적 고뇌를 표현한 가장 극명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개봉 당시 <문>은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원래 외화수입쿼터용으로 제작된 터라, 제대로 된 극장 개봉 기회를 얻지 못한 이유가 크다. 동갑인 최불암과 박근형은 당시 37세로 TV 배우로 더 알려져 있던 때였다. 내면의 번뇌를 표현하는 감정 연기, 대담한 클로즈업샷을 버텨내며 두 배우는 악기가 아닌 연기 대결을 펼치며 명배우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들 중을 연기한 이영하는 이 영화가 데뷔작으로, 그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