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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서울의 지붕밑

이형표, 1961

[한국영화걸작선]서울의 지붕밑 대표 이미지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을 했던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본에 더 이상 오즈 영화의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오즈의 스타일에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자상한 아버지와 자신이 결혼하면 홀로 남을 아버지를 염려하는 착한 딸로 대변되는 오즈식 가족드라마는 젊은 시절 이마무라 쇼헤이가 만든 관능과 살의의 세계와 참으로 멀리 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오즈의 다정한 세계에 대비되는 것이 이마무라 쇼헤이의 정념의 영화만은 아니다. 한국의 60년대 서민코미디가 보여주는 가족의 모습도 일견 오즈의 가족드라마와 같은 듯 많이 다르다. <서울의 지붕밑>은 그 중 대표 격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부장의 못난 모습은 고루하고 답답한 어른의 전형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친근하고 귀엽다. 오즈 영화의 류 치슈와 <서울의 지붕밑>의 김승호는 각각 일본과 한국을 대표하는 가부장의 이미지일 것이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는 깔끔하고 여유로운 오즈 영화의 일상과 달리 <서울의 지붕밑>의 가부장 김학규(김승호)는 딸과 아들을 통제하고 동네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참견하느라 늘 분주하다. 한의사 김학규에겐 젊은 미망인인 딸 현옥(최은희)과 아직 무직인 아들 현구(신영균)가 있고 두 친구, 관상쟁이 박주사(허장강)와 복덕방 영감 노동현(김희갑)이 있다. 영화는 김학규가 딸과 아들, 두 젊은이의 연애를 인정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크고 작은 소동을 엮어낸다. 김학규가 보기에 아들 현규는 신분이 낮은 여자와 결혼도 하기 전에 애부터 덜컥 임신을 시켜 못마땅하고 딸 현옥은 한의원 영업에 방해가 되는 산부인과 의사와 어울려 탐탁하지 않다. 세대의 차이가 극명히 드러나는 이런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보편적인 만큼 공감대가 크다. 누구나 겪을 법한 갈등구조를 바탕에 깔면서 <서울의 지붕밑>은 등장인물의 인간적 면모를 세심히 그리고 있다. 특히 그들의 잘난 면을 묘사할 때보다 그들의 못난 면을 묘사할 때 뛰어나다. 고집불통 가부장인 김학규가 어느 날 관상을 보러 찾아온 남녀의 정담을 엿듣는 장면은 나잇값 못하는 어른의 전형을 드러내지만 그래서 정감이 간다.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권위적인 인물이긴 해도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평범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 말만 믿고 덜컥 시의원에 출마하는 허영이나 집 나간 아들을 대하는 변덕 같은 것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간적 결함으로 그려진다. 관상쟁이 박주사가 거짓으로 궁합을 봐주고 돈을 챙기다 들키는 에피소드와 자기 방 월세 낼 돈도 없는 복덕방 영감이 옛 연인을 만나 덜컥 함께 살자며 방을 내주는 대목 또한 그들의 허술함과 어리석음이 귀엽게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아마 <서울의 지붕밑>을 보면서 김병욱 PD의 시트콤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순풍산부인과>의 오지명,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신구,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 등은 각각 다른 인간적 결함이 사랑스러웠던 가부장인데 그 원조를 <서울의 지붕밑>의 김승호가 보여주고 있으며 주변 인물들 또한 김병욱 시트콤의 인물을 많이 닮았다.

흔히 60년대를 한국영화의 전성기라 부르는 것은 당시 제작편수와 관객 수가 많았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영화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60년대는 그야말로 장르의 백가쟁명이 이뤄진 때이다. 그 중 <서울의 지붕밑>은 이후 나온 숱한 TV 가족시트콤의 원조이며 캐릭터의 보물창고이다. 못났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가부장을 비롯해 생활능력도 없는데 덜컥 아이를 가진 막내, 집안을 먹여 살리는 사려 깊은 큰 딸, 늘 가난하게 살다 늘그막에 사랑을 꽃피우는 홀아비,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눈치가 빠른 아저씨, 선술집을 하면서 힘들게 딸을 키우면서 마음고생을 하는 어머니 등 서로 다른 이유로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서울의 지붕밑>을 수놓고 있다. 김승호, 최은희, 김진규, 신영균, 허장강, 김희갑, 황정순, 신성일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이 모인 호화캐스팅도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서울의 지붕밑>은 60년대 가족코미디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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