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보라
이강현, 2010
10여년 전 오토바이를 만드는 공장에서 촬영을 한 적이 있었다. 주물공장에서 하루 동안 촬영을 했었는데, 공장안은 먼지로 가득했다. 그 뒷날 아침 내 목은 부어있었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이비인후과에 가야했다. ‘단 하루 그곳에 있어도 이 정도인데, 그곳에서 일년내내 일하는 사람들은 아프지 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보라>는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과 작업환경을 측정하는 모습 그리고 의사와 노동자들이 상담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특히 앞부분에 나오는 제조업공장 모습은 영상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쇳물을 쏟는 용광로, 엄청난 크기의 기계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 마네킹을 만드는 유리섬유, 마스크를 쓰고 피아노에 유기용제를 뿌리는 모습은 보는 것 만으로도 일하는 저들이 온전할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작업환경측정은 사업주가 노동자의 건강관리를 위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제도이다.
회사와 노동조합이 함께 측정기관을 정하고 현장 점검과 노동자들의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예전에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많아서 검진결과가 양호하다고 나왔지만 몇 달 안에 암으로 죽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보라>의 영상들은 노동자들의 삶을 천천히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어떤 설명도 없지만 지켜보고 있는 동안 그들의 노동을 느끼게 해준다. 아프지 않을 수 없겠구나...
석면작업 후유증으로 앉아서 말하기도 힘든 한 노동자를 마주 했을 때, 그 절망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노동의 최후는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검진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약 드시는 거 없으세요?”라는 의사의 질문에 “그니까 소주두병 이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마음이 아프다. 소음이 심한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난청이다.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상황 인 것이다.
<보라>는 직접적이진 않지만 굉장히 자극적이다. 노동자들의 상황을 너무도 가깝게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노동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끓임 없이 일해야 살 수 있는 사회, 잔업이 늘어나 면 월급은 올라가지만 몸은 그만큼 더 아프고 고통스러워진다.
영화가 시작한지 70분쯤 지났을까 딸기를 따는 두아주머니가 등장한다. 순간 깜짝 놀랬다. 감독이 무엇을 보여 주려고 하는 거지? 노동현장을 보여 주려고 했던 거 아닌가? 영화가 뒤로 갈수록 감독은 농사일, 인터넷 서버관리자, 하드복구 수리자를 등장시킨다. 제조업노동자에 그치지 않고 감독은 끊임없이 노동에 대한 질문을 해댄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 뒷부분에서 사진 찍는 동호회 사람들을 비춰준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과 대비된다. 어떤 이는 사진을 찍으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를 한다. 짧게 스치는 그림들, 청량한 날씨에 야구하는 학생들, 수영하는 사람들..노동의 대가인가? 그 짧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그 험한 노동을 감수해야하는가?
노동현장에서 위험한 사고와 유해물질에 노출돼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둔감해져있는 사회다. <보라>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든 그들의 고통을 136분이라는 시간동안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영화가 136분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너무 길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도 좀 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충분히 길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성이 깃들 여진 한 컷의 영상은 일터의 깊은 곳을 보여주기에 충분하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화면은 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힘 있게 끌고 가는 감독의 에너지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