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얼굴이 붉어진다
정겨운, 2007
이 영화를 본 건 아마도 3년 전쯤 일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식에서 보았던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나를 흥분시켰고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다.
술을 과다 섭취한 심히 드렁큰한 여자가 노래방 화장실 문을 두드린다.
남녀가 같이 사용하는 조악한 화장실. 안에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자 여자는 화장실 문을 발로 차고 몸으로 들이받는다. 잠시 후 화장실 안에서 남자가 나오고 둘은 아는 사이인지 잠시 동안 말을 나눈 후 정신없는 키스를 한다. 노래방 룸 안에서 남자의 생일파티가 끝나고 같이 있던 일행들이 길거리에서 미친 듯 술주정을 해댄다. 여자는 생일 소품용 고깔에 불을 붙이고는 그런 일행들을 바라보며 방긋이 웃는다. 장소이동. 남자는 전봇대 옆에서 개 마냥 오줌을 싸고 그 옆으로 다가온 여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주저앉아 팬티를 내리고 오줌을 싼다. 남자는 여자에게 창피함을 탓하고 둘의 티격태격이 이어진다. 소소한 대립은 점점 둘의 서러움으로 발전하고 서로 말은 하지 않은 채 점점 격해지는 그들의 울부짖음과 울음소리는 묘하게도 마치 내가 겪었던 어떤 순간 마냥 나의 가슴을 흔든다. 그 중 여자의 울부짖음은 더욱 안타깝고 안쓰럽다. 여자의 서러움은 이내 남자를 향한 발길질로 이어지고 발길질로 인하여 날아간 하이힐이 남의 집 담장으로 넘어간다. 한쪽이 맨발인 그녀에게 한 켠에 버려져있는 슬리퍼를 주워 신긴 남자는 하이힐을 찾는다며 개가 짖어대는 담을 넘어가고 여자는 노래방 앞으로 돌아와 자신의 우는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다. 여자 앞으로 남자가 뛰어온다. 피 칠갑을 한 남자는 개를 죽이고 하이힐을 가져왔다고 말하고 여자는 죽이긴 뭘 죽였냐? 물렸겠지~ 라는 답변으로 응수한다. 그 순간 둘의 쫓고쫓기는 술래잡기가 시작되고 몸싸움과도 같은 키스와 스킨십이 발랄한 음악과 함께 이어진다. 그리고 아침. 외대 역 어느 거리를 걷는 둘. 완전히 지친 몰골로 걷던 둘은 갈림길 앞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진다.
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른 관객들의 눈치(관람을 방해하는 것에 대한)를 살필 틈도 없었다.
영화 속의 모습이 분명 어느 순간 나의 모습으로 겹쳐졌고 내 친구들의 어떤 모습으로 겹쳐졌다. 영화관 안에 있던 관객들도(침묵으로 일관하셨지만) 어느 한 때(순간들) 자신들의 모습들로 보였을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 (둘의 과거)이야기에는 어떠한 사연이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는 한 때 남자를 무척 좋아했을 수도 있으며 남자 또한 여자를 좋아했던 기억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연애를 했을지도.. 그런데 그 좋아하는 마음이 어떠한 상황이나 인물에 의해 차단되어 서로 간 마음의 연결 고리가 닿지 못하게 됨으로써 그들을 가눌 수 없는 어떤 상태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짧은 이야기이지만 내 것 같은 경험으로 다가온다.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에 관하여, 처량하고 바보 같지만 또한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어찌되었든 이 영화 속 인물들은 (그것이 사랑이었든 어떤 감정이었든) 영화 안에서 한차례 신명나게 자신들의 감정을 풀어낸다. 그것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현실에서 살풀이 해내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렇게 현실에서 배출하기 힘든 감정을 영화라는 소통체는 그 안에서 자유로이 배설해주게끔 해주고 해소하게끔 해주기도 한다.
그 배설감과 해소감이 일게 해준 이 영화가 나만이 아닌 영화 속 등장인물만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