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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꿈꾸는 카메라 - 사창가에서 태어나

자나 브리스키 , 로스 카우프만, 2004

[초이스]꿈꾸는 카메라 - 사창가에서 태어나 대표 이미지

아카데미,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 최고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영화로 국내 EDIF 다큐멘터리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사진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자나 브리스키와 편집 감독인 로스 카우프만의 공동 연출작으로 영국와 인도를 오가며 사진작업을 하다 우연히 인도 캘커타의 홍등가에 사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브리스키는 허드렛일을 하며 푼돈을 버는 아이들을 모아 카메라 사용법을 가르치게 된다. 그녀가 약 2년간 거주하며 촬영한 홍등가의 풍경, 카우프만이 촬영한 브리스키의 교육 장면, 그리고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어린이들의 시점을 혼합하고 있는 이 영화는 생생하게 날것 그대로를 기록하려 하는 것만이 진실이라 주장한 키노 프라우다, 시네마 베리떼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계몽과 교육을 목적으로 홍등가에 들어간 감독의 사진기가 아이들 손에 쥐어지게 되고, 그곳의 풍경이 이들의 손과 눈으로 재조명 된다. 감독은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현상하여 그들에게 보여준다. 아이들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자신들의 세계를 신기하게, 흥분된 상태로 바라본다. 이 사진은 영국의 갤러리에 소개되고, 그 비용으로 아이들은 홍등가를 벗어나 새로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일종의 프로젝트인 셈이다. 브리스키가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고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울 때 편집 감독인 카우프만은 그 과정의 현장을 기록한다. 영화는 현장으로의 즉자적인 접근, 개입의 시도, 참여의 마당을 순차적으로 배열하며 홍등가 아이들의 주관적 시선을 강화해가면서 한 편으로 인도의 교육 행정의 폐쇄적인 관료주의를 조명하는 객관의 시선을 배치해둠으로 진실을 탐구하는 카메라, 그 진정성의 테크닉을 고민한다. 아이들을 차에 꽉 태우고 홍등가를 빠져나와 바닷가 앞에서 뛰놀도록 한 후 카메라를 아이들에게 맡겨놓은 장면은 누구나 인상적으로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의 주관적 객관성의 시선이 날 것 그대로를 표출시켜 스스로의 원천성, 그 자발적이고 시끄러운 본성에 우리를 참여시키며 거의 혼을 빼놓는다. 아이들의 한가운데서 춤을 추는 카메라. 차라리 초현실의 체험이라 부르면 어떨까. 

시네마 베리떼 창시자이자 민족지학자인 한 장 루쉬, 크리스 마르케 등이 조명한 곳은 자국인 프랑스 외의 제 3세계 국가였고, 이들은 노동자 계급, 민중들을 참여시키는, 그들에게 발언권을 부여하는 방식을 택하였으며 영상을 제어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을 양도함으로 투쟁적인 영화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식민지는 그들의 영화를 반대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현실에 대한 재현을 보려하지 않았다. 시네마 베리떼가 표방한 영화-진실이 영화 작가의 진실이라는 주관성으로 전락한 것이다. 직접 영화의 기법이 일반화 되면서 다큐멘터리는 객관성을 잃었지만 여전히 진실을 탐구하는데 있어서의 테크닉의 문제, 참여의 문제, 그로부터 발생하는 윤리적인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작가의 표현의 자유, 장비의 경량화, 그리고 촬영 대상의 참여로 이뤄지는 시네마 베리떼의 진실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영화적 진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꿈꾸는 카메라>는 카메라 자체의 호기심을 노출하며 약자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그와 함께 약자 사이에서의 카메라의 위치와 역할을 고민한다. 훼방 없는 진실 포착의 순간들, 재현을 거부하지 않고 예술적 창작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무구함, 그로 인해 계몽의 목적이 달성되거나 혹은 실패한 순간의 기록. 카메라는 기록하면서 꿈을 꾸고 있다. 다소 낭만적인 다큐멘터리이지만 그것이 가공된 픽션임을 알게 되는 순간, 현실의 신비스러움이 드러난다. 우리가 보길 원하는 것을 아이들이 본성 그대로 재현해줄 때의 일치감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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