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왕십리
임권택, 1976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한국성’ 자체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한국의 역사, 종교, 예술에 대해 줄기차게 질문했고, 한국의 정체성을 탐구해왔으며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감독이라고 회자되어왔다. 그가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와 한국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천착해서 빚어낸 한국의 본래성과 정체성은 동학혁명과 분단의 역사, 불교라는 종교, 그리고 판소리와 한국화라는 예술을 제 속성으로 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부터 임권택 감독은 <태백산맥>, <개벽>, <만다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서편제>, <춘향뎐> 등을 통해 ‘한국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해왔다. 특히 외국 비평가들과 지식인들은 1980년대 이후 임권택 감독의 일련의 영화에 열광했고, 국내 학자나 평자들 또한 이 시기의 임권택 영화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의 영화는 국경 밖에서는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관심과 색다른 취향을 자극했고, 국경 안에서 그의 영화는 점점 더 인터내셔널해지는 시대에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내셔널의 장벽을 굳건하게 마련해주고 있다는 점 때문에 환영을 받았다.
따라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한국영화 역사에서 갖고 있는 존재감은 만만치 않다. 그의 영화는 한국영화의 역사를 민족주의, 인본주의, 사실주의의 틀거리로 읽게 해주는 원형 텍스트와 같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로 인해 한국영화의 역사는 다른 국가, 특히 식민지와 전쟁의 경험을 지닌 국가의 영화사와 ‘다르게’ 기술할 수 있는 튼실한 지반을 갖게 된 것이다. 약 100편에 달하는 그의 영화를 따라 읽으면 한국영화의 역사가 보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근래 들어 ‘임권택 영화’는 이러한 큰 그림 속에서 읽히는 데에서 나아가 장르영화의 맥락에서 활발하게 재발견되고 있다. 이 맥락에서 다시 읽히는 그의 영화는 주로 그가 먹고살기 위해 만들었다는 그의 초기 영화와 영화법 및 정책에 편승해서 만들었다는 습작 영화들이다. 초기의 그의 영화는 전쟁영화와 액션영화 장르에 집중되어 있었고,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새마을 영화와 반공영화 등 한국에 독자적인 시대 장르인 국가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든 바 있다. 이 시기 그의 영화의 특징을 꼽자면 ‘도식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감독으로 생존하려는 그의 몸부림과 국가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순응해서 그 생존을 연장하려는 그의 의지가 만들어낸 특징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이렇듯이 임권택 감독의 영화라는 텍스트는 가장 한국적인 감독이자 가장 세계적인 감독으로 국경 밖에 알려진 예술영화 계열과, 국가 이데올로기를 알리는 프로파간다 영화를 포함해서 철저하게 오락과 순응을 지향한 대중영화 계열로 양분된다. 그의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작가주의 독해들은 후자의 계열에서 전자의 계열로, 국경 안에서 국경 밖으로 나아가는 연대기적 수순을 따라 그의 영화를 읽고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오락영화를 만들다가 작가 개인의 자각과 각성에 의해서 비로소 세계에 어필할 수 있는 한국적 예술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면서 그의 영화의 어긋나는 지점을 서둘러 봉합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이 두 계열 안에서 혹은 이 두 계열 간의 모든 함수가 깨지는 곳에 놓인 그의 영화를 간과하기 쉽다. 그곳에 놓인 영화에는 그가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그래서 허구적인 ‘한국성’ ‘한국인다움’ ‘한국의 정체성’이 불안정해지고 분열을 일으킨다. 프로파간다 영화와 장르영화의 도식성 또한 사라진 그 자리에 들어앉은 것은 종교나 예술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며 장르도 아닌 차가운 ‘현실’이다. 시대의 불안정한 대기를 그대로 마시고 어떠한 미사여구 없이 그대로 내뱉는 것, 그곳에서 흥행을 위하고, 세계적인 감독의 명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해 취했던 모든 목적성을 상실한 ‘무목적성의 목적’을 띤 그의 영화가 출현한다.
<길소뜸>(1985)이 그 무목적성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영화라면 <왕십리>(1976)는 이 계열의 임권택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두 편의 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소위 ‘아줌마’ 라고 폄하되는 한국의 중년여성을 ‘근기(根氣)’의 주체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 편의 영화에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여성의 배신’은 현실에 대해 품을 법한 억지스러운 환상과 희망을 도려내는 메스와도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왕십리>는 <길소뜸>과 비교해보자면 대중영화의 통속성과 장르영화의 도식성이 많이 묻어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준태(신성일)는 깡패이며 준태가 찾은 새로운 연인인 윤애(전영선)는 호스테스라는 점에서 당대의 호스테스물과 액션영화 장르에 나오는 인물의 전형성을 따르고 있다. 또한 잦은 플래시 백과 15년 정도의 긴 스토리 시간 등을 갖고 있다는 점 또한 당시 영화의 지배적인 형식을 벗어나 있지 못한 게 사실이다. 준태는 죽은 아버지의 유산을 양어머니를 비롯한 아버지의 재혼 가족에게 모두 넘기고 고향 왕십리를 등진 채 일본으로 건너가 야쿠자 생활을 한다. 14년 만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준태는 과거의 고향을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자신의 기억을 이어서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준태는 14년 전에 헤어진 연인인 정희(김영애)를 찾아 헤맨다. 과거를 등지고 현재 시제로 완벽하게 전환되는 중반부에 정희는 말없는 대상에서 말하는 주체로, 피해자에서 사기꾼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결국 정희는 준태에게 ‘내게 주어진 생활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 자체가 진실이 아닐까’ 라는 말을 남긴 채 준태의 지갑을 훔친 후 택시 안에서 오열한다.
한편 호스테스인 윤애는 선을 보기 위해 고향인 시골로 내려간다. 정희가 은유하는 과거의 ‘순수의 시대’는 사라졌고, 윤애는 현재의 삶의 조건을 바꾸기 위해 떠난다. 남은 건 과거에 지체되어 현실을 부인하고 있는 준태뿐이다. 경제개발계획이 발표된 시기에 왕십리를 떠나 유신헌법으로 인한 독재가 극에 달할 즈음에 돌아온 준태의 ‘잃어버린 14년’과 당구장 아저씨(최불암)와의 마지막 장면은 정치적 알레고리로 이 영화를 읽게 만들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당대의 모든 목적 지향적인 경향들, 인텔리가 중심이 영상시대의 예술영화 지향성과 국가 주도의 프로파간다적 지향들, 스크린 쿼터를 채우는 영화들의 오락 지향성을 그야말로 내려놓은 영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묻는다. 순수했던 과거와 피폐해진 현재 사이에서 정지되어 있는 1976년 한국에서 도대체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임권택 감독의 국경 안과 국경 밖의 영화 그 사이에는 시대의 불안정한 대기가 그렇게 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