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파마
이란희, 2009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많은 여성들이 지금 한국 땅으로 편입되고 있다. 서로 다른 인종이 함께 섞여 사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 혼합이 ‘돈’을 매개로 하여 강제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거기엔 필연적으로 폭력이 내재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한국으로 시집오자마자 일명 ‘아줌마 파마’를 강요받는 베트남 여성의 이야기다.
첫 장면, 모아 쥔 두 손은 껴있는 결혼반지가 어색해 보일 정도로 초조함을 드러내고 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위로 향하면 역시나 불안한 눈망울을 굴리고 있는 한 여성의 표정을 보게 된다. 이때까지도 우리는 이 여성이 베트남인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만큼 우리와 외양이 닮았다(물론 영화 속에서 베트남 여성을 연기한 배우는 한국인이지만). 그가 베트남인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은 그를 둘러싼 한국여성들의 대화를 통해서다.
계속되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 당연히 못 알아듣는 베트남 여성. 이렇게 그들의 대화에서 이 이주여성은 철저히 대상화된다. 그래서 얼굴 위에 놓이는 수건은 그만큼 투박스럽게 느껴진다. “그래도 착하잖아요?”라는 대사 역시 그녀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라, 그녀를 대상화하는 말일 뿐이다. 아직 우리는 이 베트남 여성이 착한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이국땅에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 것이다.
이 영화의 좋은 점은 그 이주여성에 대해 섣불리 아는 척을 하지 않고(즉, 그의 감정을 과장하지도 않고 값싸게 동정하지도 않으면서), 상황을 진중하게 관찰하여 세밀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상에 대한 이런 윤리적인 태도가 결국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은데, 관객들은 그 이주여성의 불안을 그대로 체감하게 되고, 더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반성까지 촉구하게 된다. 감독의 이러한 태도는 그들에 대한 조심스럽고 진심 어린 관찰의 경험에서 생겨난 것일 거다.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함이 곳곳에 묻어나는 영화이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대상에 대해 감정적이지 않고 냉철한 태도를 유지한 것이 힘을 가지게 된 영화라고 생각된다.
이제 시어머니를 비롯하여 다른 많은 한국여성의 머리모양과 똑같은 그것을 가지게 된 그.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앞길만큼이나 혹은 그의 심정만큼이나 가파른 계단 앞에 서게 된다. 눈물을 흘려보지만 소용없다. 그래서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무거운 가방을 힘겹게 옮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누구나 그의 불안과 슬픔에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파마>는 자신의 문화권으로 타자를 강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