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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수학여행

김희진, 2010

[초이스]수학여행 대표 이미지

중학생인 병화(이지웅)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수학여행에 마음이 설렌다.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느냐”며 수학여행 참가를 만류하는 엄마에게 병화는 자신이 벌어서 갈 테니 걱정 말라 한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건강보조식품을 배달한 지 한 달. 첫 월급을 받으면 수학여행을 갈 수 있다는 병화의 계획은, 첫 달부터 월급을 줄 수 없다는 사장의 으름장 때문에 예기치 않게 틀어진다. 병화는 친구들과 연습한 ‘제주도 푸른밤’을 부르지도 못하고, 사전을 팔아 간신히 산 새 운동화도 신지 못하게 됐다.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수학여행을 떠난 날, 병화는 선생(조판수)에게 떠밀려 자신처럼 생활고 때문에 학교에 덩그러니 남은 다른 반 두 친구와 함께 서울 근교의 해수욕장을 찾는다. 

누구나 유년의 기억을 갖고 있다. 동시에 유년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누구에게만 특별한 유년의 한 때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성장이라는 소재가 지닌 매력이다. 하지만 유년기의 특별한 사건을 다룬다고 해서 저절로 보편적인 공감이 뒤따르진 않는다. 김희진 감독의 <수학여행>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성장영화의 드라마투르기를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성장영화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피해간다. 이를테면 소년의 고통을 드러내는 방식이 그러하다. <수학여행>은 사건의 연쇄를 만들거나 과도한 대사로 병화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묘사하지 않는다. 병화는 어렵고 힘든 나를 제발 좀 봐 달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수학여행>은 사건이나 캐릭터를 내세우는 대신 그들이 마시는 공기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해수욕장으로 원치 않는 ‘수학여행’을 가게 된 병화 일행. 지하철이 한강을 지날 때 예민(장의영)은 병화에게 심드렁한 말투로 ‘이게 한강이야?’라고 툭 내뱉는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묻는 이 뭉툭하고 짧은 대사의 울림은 묵직하고 크다. 예민의 진짜 질문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한강이냐?’고 듣는 이는 없을 것이다. 관객은 예민의 질문과 병화의 침묵을,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창피함의 대면으로 읽을 수도 있고, 반면 수학여행을 어떻게든 가고 싶었던 소년, 소녀가 수줍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말걸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유년의 결핍을 더듬어 볼 어떤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도 빼놓을 수 없다. 수학여행이 끝나고 병화는 운동화에 가득한 모래를 발견한다. 운동화를 뒤집자 한 줌의 모래가 스르륵 빠져나오는 것을 보면서 병화는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김희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갖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갖지 못하는 것 또한 많았던” 유년을 그리려 했다고 말했는데, 운동화의 모래와 병화의 웃음은 공백으로서의 유년을 조금이나마 위무해주는 행복한 기억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얼마전 폐막한 서울독립영화제 2010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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