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열정
비얌바 사캬, 2010
<열정>은 화려했지만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몽고영화의 어제와 자유는 있지만 산업적 기반을 잃어버린 몽고영화의 오늘을 세 명의 감독을 통해 그리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몽고영화의 거장감독 지그지드 데지드에서 시작한다. 공산당 정권아래서 당대를 대표하는 국민감독으로 떠올랐던 지그지드 데지드는 국립영화제작소인 몽골키노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의 영화적 업적과 명성조차도 당시의 엄격한 검열의 칼날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체제가 자리잡은 몽고에서 영화는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 시대를 거장 지그지드 데지드의 아들인 빈더 지그지드와 독립영화감독인 비얌바 사캬가 살고 있다.
빈더 감독과 비얌바 감독은 지그지드 감독과 몽골키노의 후예들이다. 빈더 감독은 아버지 밑에서 연출공부를 하고 일찌감치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후 촬영감독으로 경력을 쌓고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반면 비얌바 감독은 우연히 영화에 눈을 뜬 후, 학업을 중단하고 몽골키노에 입사하여 지그지드감독 밑에서 온갖 잡일과 조연출 수업을 통해 영화를 공부하였다. 러시아유학을 원했지만 자발적으로 학업을 중단한 사람에게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는 공산당의 원칙 때문에 꿈을 미루다가 공산당 몰락 이후인 90년대에 이르러서야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비얌바 감독의 눈에 비친 몽고 영화계는 초라하기만 하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실망은 상업영화를 만들고 있는 오랜 친구 빈더 감독의 현실이었는지 모른다.
<열정>은 아버지의 명성과 영화에 대한 열정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빈더 감독의 영화에 대한 운명 같은 열정을 뒤쫓고 있다. 상영관이 사라지고 할리우드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 내는 상업영화에 밀려 몽고의 현실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뒷전으로 밀려난 현실에서 빈더 감독은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일지라도 여전히 몽고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관객을 만나기 위해 꽁꽁 얼러붙은 길을 달려 몽고의 넓은 땅을 달린다. 입장수입과 기름값을 걱정하고, 매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영화 만들기를 멈출 수는 없다. 다큐는 영화적 신념과 절망 사이를 오고 가는 빈더 감독의 고뇌를 정직하게 쫓아간다.
그러나 빈더 감독의 찾아가는 영화관을 뒤따르며 그의 고단한 삶을 묵묵히 지켜보던 비얌바 감독은 어느 순간 카메라 앞으로 나서 그와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검열의 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와 시장경제이론이 지배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고, 상업영화를 만드는 빈더와 독립영화를 만드는 비얌바의 삶 역시 몽고영화의 현실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닫는다.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몽고의 얼어붙은 영화의 땅을 녹이는 것은 결국 그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