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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아네스 바르다, 2000

[초이스]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대표 이미지

다큐멘터리는 만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나게 되어 있단 이야기를 한다. 그게 주장이든 shot을 구성하는 방식이든 간에 만든 이의 자국이 보이게 된다. 그래서 가끔 의문이 든다. 좋은 다큐멘터리를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나? 좀 우스운 질문이지만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만나면 한번은 해보고 싶은 질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는 감독의 자국이 진하게 배어 있다. 여유롭고 재기 어린 그녀, 영화는 그녀 그대로다. 80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녀는 여전히 재기 어리고 즐겁다. 

다큐멘터리의 첫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 아네스 바르다의 여유는 끝날 때까지 지칠 줄 모른다. 들판에서 그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어릴 적 이삭 줍던 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감독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답하는 식이다. 그러다 어떤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이 멋쩍은지 이야기를 마친 사람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화면 밖으로 나간다. 정겹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이고 아주 사소하게 지나가는 장면이긴 하지만 그 정겨움이 주는 힘은 크다. 카메라 앞의 사람을 이야기의 한 부분이거나 쉬이 가져다 쓰는 이미지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표현하는데 덕분에 관객은 주인공이 정겹고 편안해진다. 다큐멘터리 안의 주인공들은 힘든 상황에 놓여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으로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그러한 방식이 전달하려고 하는 주제를 더 돋보이게 만들거나 주장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사실 더 안타까운 것은 카메라 앞의 사람, 보편적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네스 바르다의 주인공들은 역동적이다. 자신의 역사와 생각을 가지고 카메라 앞에 선다. 아네스 바르다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줍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감자, 과일, 쓰레기통에서 음식, 그리고 감독은 이미지까지 줍는다. 아네스 바르다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풍부하다 못해 멍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세상 구경하는 느낌으로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그러다 순간순간 그녀의 여유와 어울려져 있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움과 그러면서도 능청스러움에 놀라게 된다. 이삭 줍는 사람이 없어 감자밭에 갔더니 거대한 농장에서 큰 감자는 상품 가치가 없어서 버려지는 장면을 만난다. 상품 가치만이 의미가 있는 세상에선 규격보다 큰 감자는 오히려 쓸모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굶고 있는데 누군가는 감자를 버린다. 밭에서 주운 이런저런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 요리사는 배 타고 몇 날 며칠을 오는 과일보다는 잘 익어 땅에 떨어진 과일이 훨씬 좋단다. 어디에 가면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는 지혜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하며 밭에 떨어진 과일을 줍는다. 거기까지 오면 앞에서 몇 번 보여줬던 그 많던 화물차의 의미가 밝혀진다. 

급하지 않게 그리고 불편하지 않게 프랑스 사회의 모순과 지구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보여준다. 관객도 주인공도 맘 편히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그 편안함은 기운이 빠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데, 관객은 남은 힘으로 세상을 기존의 방식과는 조금은 다르게 조합하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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