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두개의 선
지민, 2010
삶의 가장 큰 환희와 고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것이 하필이면 좋은 삶의 형태를 꿈꾸고 유지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순간과 맞닿아 버리면? 여기 그 충돌하는 시간을 그려낸 다큐멘터리가 있다. 아니, 충동일지 모르나 기실 더 단단한 사람으로 가기 위한 시간이었음을 그려내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두개의 선>
<두개의 선>은 비혼을 꿈꾸어 왔던 두 젊은이가 동거와 임신, 출산의 시간을 지나며 겪는 자기 성찰의 과정을 쫓아간다. 어떤 바람을 갈구하고 설파하기보다 그 바람의 연원을 찾아들어가고 흔들리는 실패를, 또는 카메라를 향한 넋두리와 자기고백을, 철없어 보이지만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춤을 추어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미래의 삶에 대해 어떤 선언보다도 강인한 의지를 속삭이며 공감의 주억거림을 획득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이미 단단해져서 쨍하고 깨질 거만 같은 차가운 얼음이 아니라 몽글 몽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어디로 흘러내릴지 모를 뜨거운 용암 덩어리와 같다.
이 뜨거운 덩어리는 또 다른 다큐멘터리스트인 나에게 한 가지 생각의 지점을 제공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가 미디어 민주주의를 확장시키기 위한 주요한 매체라든지 소외된 이들의 발언 기회를 제공하는 효율적인 매체라든지 또는 우아 떠는(?) 작가주의를 완성하기 위한 (지나가는)실험의 도구이든지... 다양하게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이 언급되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자기만의 능력을 가진 이들이 모여 합주하는 콜라보레이션, 즉 협업의 즐거움과 역동성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하필 그 중 한명은 다큐멘터리 감독(지민)이었고 한명은 희곡을 쓰는 작가(철)였기 때문에 가능 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가족(특히 부부) 다큐멘터리가 생계와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중심이 되는 한 인물이 디렉팅 하는 구조였기에 참여의 기운과 열정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느낌은 발견하기 힘들었었다. 그러니까 스탭과 감독이라는 구조는 변하지 않은 채 말이다. 하지만 <두개의 선>은 지민과 철의 목소리가 번갈아 나오며 서로의 고민을 묻고, 듣고, 촬영 하며 일방적인 디렉팅 보다 점진적인 교감의 과정이 중심이 된다. 작품은 은근한 공감과 성찰의 기운을 퍼뜨린다. 자신의 얼굴과 아는 사람의 얼굴을 찍어대며 좋다고 낄낄 대는 셀프 카메라 형식이나 가족이 주는 편의함을 미적 착취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적다큐멘터리와는 결이 다른 것. ‘한 비혼 커플의 성장기’인 <두개의 선>은 일방적인 전달과 권위 획득에 목숨 거는 다큐멘터리 작가가 만들었다면, 아마도 이리 솔직하면서도 직접적인 화법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경험과 극작가로서의 경험이 긴 시간을 지나 감내하기 힘든 현실의 변화를 프레임에 담고 작은 목소리를 녹음할 수 있게 한 큰 동력이었을 터. 이뿐만이 아니다. 방안에 머물러 있던 카메라는 독특한 느낌의 일러스트와 종인 인형 퍼포먼스로 점프하여 익숙한 공간과 사운드가 주는 단조로움을 극복한다. 비합리적인 제도가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들의 삶을 서서이 굳어버리게 하듯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화석처럼 굳어버린 메시지가 아닌 현존하는 고통의 일부임을 스며들 듯 재현하여 보여준다. 참여한 일러스트 작가와 이 두 작가의 열려 있는 교감의 자세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으리라.
독립 다큐멘터리가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자리매김 되려면 물론!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보수적인 제작 체계를 혁신하는 노력 또한 수반되어져야 할 것이다. 작가주의와 거대 담론의 틀, 또는 속보의 무게에 짓눌린 활동이 아닌, 제안의 용기를 부리고 열려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 그런 면에서 <두개의 선>은 창작의 협업과 열려 있는 참여가 주는 무한함의 두근거림을 내포한 작품일 것이다.
중간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맞춰 이 연인은 춤을 춘다. 그리고는 하얀 눈밭 위에서 그들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이 체제가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최소 단위. 즉 가족의 형태를 만들기 위함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 연인은 자기들만의 결혼을 상상하며 인생의 황금기를 즐길 줄 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 아픈 아이의 부모가 된 이 연인은 비혼의 원칙을 버리는 결단을 내린다. 어쩔 수 없음이라 보일 수 있겠으나 새로운 우주가 작은 아파트 안에 갑자기 생겼으니 둘만의 관계에서 형성된 생각과는 다른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거실 빨래 건조대에 모여 옷들을 정리하는 이 가족(이상하게도 이 작품에서는 옷과 관련된 상황이 많이 나온다.)의 모습 위에 감독의 바람이 흐른다. 그 바람은 불안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 또렷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지민과 철, 그리고 강이의 그 찰나와 바람이 영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