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아스라이
김삼력, 2007
<아스라이>는 그 어원만큼이나 뭔가 모호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거나 들릴 듯 들리지 않고 생각날 듯 생각날 듯 하면서도 가물가물한 기억에 관한 영화다. 어쩌면 필자도 4년이 지난 영화를 애써 기억해내며 이 리뷰를 쓰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왜 이 힘든 기억의 편린을 잡으려 애쓸까? 그것은 바로 십 수년째 지역에서 영화를 하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서울이외의 지역에서 영화를 하는 이들이라면 십분 공감이 갈 만한 내용이라는 의미다. 영화는, 영화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호라는 인물이 영화에 입문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숱한 난관과 고초를 아주 리얼하게 다루고 있다. 결론은 액션영화나 첩보영화도 아닌데 기어코 또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아니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영화에 대한 이상한 불같은 열정을 노래한다. 그것도 당당하게가 아니라 절룩거리면서 말이다.
김삼력감독의 장편데뷔작인 <아스라이>는 많은 영화에서 등장한 식상한 소재인 영화에 대한 영화이다. 그것도 변방의 독립영화를 다루고 있으니 이건 마치 일제하의 경북시골마을의 소작농을 다루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러 그들은 일제치하인지 모르고 한국전을 맞이하기도 했으니 이 영화의 운명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정작 이 곳 사람들은 별로 보질 못했으니 말이다.
영화는 대구지역에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영화청춘의 고뇌와 시련을 그려 대구의 제작환경의 열악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10여 년간 지역에서 영화를 만들고자 한 감독 자신의 인생사를 그리고 있다. 또한 다른 또래들과는 조금은 다른 길을 가는 20대 영화청춘의 상실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자 영화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성장해가는 성장영화라 할 수 있다.
감독과 촬영감독 모두 같은 사무실에서 수년간 일했고 우리들이 일했던 그 과정을 영화로 만든 것이기에 필자는 누구보다 실제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이다. 또한 출연도 했으니 제작과정도 잘 알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영화보다는 현실이 훨씬 더 척박했음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현실이 별반 나아지지 않았으니 더 폐부를 찌르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개봉 후 감독에게 영화화하느라 현실을 좀 미화한 것 아니냐고 했으니 말이다.
<아스라이>는 감독의 주장에 의하면 국내 최초 HD흑백 장편독립영화다. 사실 처음에는 지역에서 영화뿐 아니라 뭘 하든 국내 최초 타이틀이 걸려야 그나마 남들이 보아준다는 척박한 현실에 기인한 감독의 고도의 마케팅전략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HD가 뭘 의미하는가 말이다. 고화질인데 그나마 고화질을 잘 안보이게 흑백으로 찍는 것이 국내 최초 HD흑백 장편독립영화라는 타이틀에 집착한 결과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완성 후 제명이 <아스라이>로 붙게 되자 청춘의 아스라한 기억에 관한 영화니 그 청춘은 잿빛일 거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결국 설득 아닌 설득을 당한 셈이다. 하여간 이 부분은 지금도 미스터리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인지 아예 잿빛 꿈을 꾸려고 한 것인지 몽롱하니 말이다. <아스라이>는 촬영기법에서도 롱테이크를 많이 썼다. 그리고 클로즈업을 통한 인물들의 감정연기도 별로 없다 보니 뭔가 현재인지 과거인지 모를 풍경들을 아스라이 바라보는 그런 영화가 되었다. 이것 역시 의도인지 결과론적 미덕이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완성도가 높은 영화가 아니다. 그러니 웰메이드나 대중적 파괴력이 있는 영화는 더 더욱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의 리뷰를 쓰는 이유는 영화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이 척박한 현실을 개척해나가는 그 여정을 다른 이들도 보아주었으면 하는 이유 때문이다. 감독의 연출의 변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와 삶에 관해 고민하고 있을 20대 영화청춘들에게
비록 영원을 동경하는 한 순간의 꿈일지라도
한 줄기 실낱같은 희망의 눈물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이 영화를 바칩니다.
부연 설명 : <아스라이>는 2006년 인디포럼 폐막작으로 선정되었고 2007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2007 부천국제영화제, 동경 이미지포럼, 벤쿠버 영화제 등에 초청되었고 2008년 KBS1 TV 추석특집 독립영화관에 방영되었다. 대구 스탭이 다수 참여하여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로케이션한 작품이자 지역의 영화제작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편의 지역영화 보고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