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김응수의 영화는 여행 없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때로는 영화촬영 작업이 여행을 위한 구실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사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실제로 그가 여행을 떠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불현듯 그의 영화작업이 시작되어 버리곤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데뷔작 <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1996)에서 <
달려라 장미>(2005)까지만 해도 분명하지 않았던 여행의 모티브는 별안간 <
천상고원>(2006)에서부터 노골적으로 그의 영화를 구성하는 틀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사라진 여인의 흔적을 찾아 라다크로 향하는 K라는 사내의 여정을 좇는 로드무비 <천상고원>, 1980년대 학생운동의 기억 주위를 맴돌면서 서울과 남도를 오가는 다큐멘터리 <

>(2007), 어머니가 남긴 그림 속의 풍경을 찾아가는 한 청년의 여정을 실험적인 방식으로 담아낸 에세이영화 <
물의 기원>(2009) 그리고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논쟁적 저서 <요코 이야기>에 묘사된 여정을 따라 일본으로 향한 신작 다큐멘터리(현재 후반작업 중)에 이르기까지, 여행은 김응수 영화의 출발점인 동시에 그것이 그려내는 영화적 탐구의 형상이 되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여행은 언제나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행으로서 시작되긴 하지만, 흥미롭게도 다른 무엇(들)의 개입에 의해 그 여행의 경로가 어김없이 뒤틀리거나 산란되고 만다. 이는 김응수 영화에서의 여행이란 실은 노정을 일종의 접촉지대(contact zone)로 만듦으로써 여러 우연적 사건들이 안으로 흘러들어와 노정 자체를 변형시키는 과정을 보기 위한 형식임을 드러낸다. 그의 영화 촬영(여행) 중 종종 발생하는 이 변형과정은 고스란히 그의 영화에도 반영된다. <천상고원>에서 (감독 자신이 연기한) K라는 인물이 사라진 여인의 흔적을 찾는 과정은 히말라야의 험한 산길을 오르는 동안 감독이 실제로 겪은 물리적 고통의 기록들로 대체된다. 또한 주인공 K는 비단 허구의 인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감독(K`)과 그 둘이 융합된 복합체(K―K`) 사이를 오간다. 결말부에 이르면 감독 자신이 몇 년 전 라다크를 방문했을 때 촬영한 사진을 그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담은 장면들을 보여주는데, 이 장면들이 영화 안에서 K의 여정의 끝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인지, K`의 촬영현장의 메이킹 필름으로서 갑작스레 끼어든 것인지, 아니면 이 둘 모두인지는 사실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과거(사라진 여인)에 대한 탐색으로 시작되었던 영화가 여기서는 철저히 현재적인 순간의 생생함과 활력을 전달하는 쪽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 길을 돌아온 김응수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의 내성적인 회고의 태도(오래 지속되는 과거 안에 머물기)와 단호히 결별하고 그 어떤 감상도 없이 현재의 강렬함으로 과거와 맞서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부터다. <천상고원>에서 그가 감행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과거를 낯선 것으로서 재발견(<과거는 낯선 나라다>와 그 이후)하기 위한 여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