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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두만강

장률, 2009

[초이스]두만강 대표 이미지

살고, 그곳을 경유하는 아이들이 있다. 눈과 바람만 가득하고 어쩐지 텅 비어 보이는 마을이 있다. 어떠한 이물거리는 소리와 이미지가 개입이라도 한다면 마치 그 공간을 오염이라도 시킬 듯 새하얀 그곳, ‘두만강’. 그곳에 불순물처럼 ‘저쪽’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불안하게도. 

감독이 본인의 입으로 표현했듯 <두만강>은 차가운 영화이다. 이 ‘차가운 영화’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특히 아이를 다루는 방식), 공간을 만드는 방식(그 만의 미니멀리즘), 동시대를 표현하는 방식(리얼리즘), 사유하는 방식(그의 아이덴티티) 등은 장률 감독만의 문법을 구축했다고 할 정도로 확고하고 특징적이다. 그 중 영화를 구문하는데 있어 프레임을 구성하는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다. 주로 프레임인하는 방식으로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무대의 주인공을 소개하고 마이크를 건네는 형태로 친절하게 시작하는 그의 방식은 ‘자, 이제 이 사람을 잘 따라가 보세요’ 라고 집중시킨다.
수미쌍관으로 배치된 아이의 운명. 아이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구성하는 프레임 속의 프레임들. 폐건물 안에서 창 밖 너머를 주시하는 미장센은 두 개의 창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건물 안에서 밖을 비추는 큰 프레임과 그 안의 창문 두 개의 작은 프레임. 가장 바깥의 레이어인 건물 안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창호의 친구, 그리고 그 다음 레이어인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창호, 그리고 그 다음 레이어인 다른 창밖에서 공안에게 잡힌 채 창호의 모습을 바라보는 정진. 이 세 겹의 레이어로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함축하여 표현한다.
그렇다면 창호와 순희 남매는 어떻게 표현하는가. 말을 못 하는 순희와 그런 누나의 입이 되어 주는 동생 창호. 이 남매는 서로가 보호자이면서 분신이다. 그렇기에 순희의 유린이 창호에게 다가오는 데미지는 더 크다. ‘누나가 북쪽사람과 하는 거 봤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 집에 간 창호는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고 창밖에 기대어 서 있다가 다시 나간다. 이때 누나는 그 창 안으로 프레임인 된다. 프레임아웃 되는 창호와 동시에 프레임인 되는 순희. 
결국, 끝 부분에 이 영화는 동시간 순희를 병원에 창호를 폐건물에 각각 위치시킨다. 각각 떨어진 그곳, 프레임 안에 들어오지 않은 순희가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 창호를 부른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순간, 처음으로 입으로 소리를 내어 동생이름을 외치는 것이다. 프레임 밖에서. 

너무나도 차갑고 바스라 질듯 마른 영화.
프레임 밖의 인물이 안으로 들어올 때, 그리고 밖의 인물이 그곳에서 존재할 때, 그 긴장감을 그렇게 균형 잡는 영화. 경계에 존재하는 두만강에서의 그들. 목격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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